동거인 — 9화. 밀린 값
《동거인》 — 연재 9화
엿새째 아침, 로그에 열림이 찍혔다. 전날 오후 두 시 육 분.
나는 냉장고부터 열었다. 가득 채워둔 우유, 그대로였다. 계란 그대로. 즉석밥, 쌀, 화장지, 세제. 사흘 전부터 나는 품목별 수량표를 만들어놓고 매일 아침 대조하고 있었다. 표의 모든 칸이 어제와 같았다.
들어와서, 아무것도 안 가져갔다.
밀린 게 사흘치인데. 받으러 온 게 아니면 뭐 하러 왔나. 나는 식탁에 앉아 표를 다시 봤다. 표는 완벽했다. 물건은 하나도 안 줄었다.
출근 준비를 하다가 그걸 알았다.
아침 일곱 시 사십 분에 밥을 데우는 게 내 루틴이다. 그런데 전자레인지 시계가 네 시 이십팔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장인가 했다. 그런데 벽시계도 네 시 반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초침은 돌고 있었다. 멈춘 게 아니라 늦은 거였다.
폰을 봤다. 일곱 시 사십일 분. 폰은 맞다. 폰은 네트워크가 시간을 맞춰준다.
나는 집 안의 시계를 다 확인했다. 벽시계, 전자레인지, 내 방 탁상시계, 그리고 서랍에 넣어둔 손목시계. 아날로그, 배터리로 가는 것. 전부 늦어 있었다. 전부 돌아가고는 있었다. 늦은 채로.
폰 시간과 하나하나 대조해서 차이를 적었다.
벽시계: 3시간 12분 늦음.
전자레인지: 3시간 12분.
탁상시계: 3시간 12분.
손목시계: 3시간 12분.
네 개가 전부, 분 단위까지 똑같이 늦어 있었다.
고장은 저렇게 안 난다. 배터리가 닳으면 시계마다 다르게 늦는다. 정전이면 전자기기만 리셋된다. 다른 방에 있는 네 개의 시계가 같은 양만큼 늦으려면 방법은 둘뿐이다. 누가 하나하나 돌려놓았거나.
아니면 이 집의 시간에서 세 시간 십이 분을 떼어 갔거나.
물건을 채워놨는데 물건을 안 가져갔다. 대신 이걸 가져갔다. 사흘 밀린 값. 나는 환산을 해보려다 그만뒀다. 사흘이 왜 세 시간 십이 분인지, 환율이 뭔지, 계산할 방법이 나한테 없었다. 처음이었다. 셈을 하다가, 셈이 불가능해서 멈춘 건.
저녁에 예람이한테 시계 네 개를 보여줬다. 예람이는 벽시계를 한참 올려다봤다. 그리고 예람이 입에서 나온 첫마디를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거다.
"다행이다."
다행. 나는 물었다. 뭐가 다행이야. 시계가 세 시간씩 늦는 게.
"시계면 싸게 끝난 거야." 예람이는 벽시계를 내려서 바늘을 폰 시간에 맞추기 시작했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처음 해보는 게 아닌 손놀림. "밀리면 물건 말고 다른 걸로도 받아 가. 이번엔 시계였을 뿐이야."
이번엔. 그럼 다른 때는 뭐였는데. 나는 물었고, 예람이는 바늘 돌리는 데만 집중했다. 대답이 없는 게 대답이었다.
"수칙 7번이 이거랑 관련 있어?"
예람이 손이 멈췄다. 일 초쯤. 그리고 다시 바늘을 돌렸다.
"…시계 다 맞춰놓고 자자. 낮에 비우고, 채우고, 하던 대로 하면 다시는 안 밀려."
그날 밤 시계를 다 맞춘 집에서 나는 이상한 걸 하나 더 확인했다. 탁상시계를 맞추려고 서랍을 열었을 때부터 걸리던 거였다. 서랍 속 손목시계. 상경할 때 엄마가 사준 거라 나는 그 시계가 몇 년째 서랍 밖으로 나온 적이 거의 없다는 걸 안다. 배터리가 아직 사는 게 신기한 물건이다.
서랍 속에 있던 것까지, 세 시간 십이 분.
집 안 어디에 있든, 눈에 띄든 안 띄든, 이 집에 있는 시계면 다 받아 갔다는 거다. 그건 뒤진 게 아니다. 뒤진 흔적은 없었다. 이 집에 뭐가 어디 있는지, 그냥 아는 거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3일 = 3시간 12분. 환율 불명.
받아 가는 목록에 '물건 아닌 것' 있음. 확인됨.
그리고 나는 결정을 하나 했다. 다음이 있기 전에, 나는 그것을 한 번은 봐야겠다. 로그 말고, 소리 말고, 눈으로.
퇴근길에 초소형 카메라를 주문했다. 만 팔천구백 원. 가계부에는 '가전'으로 적었다.
— 10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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