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44화. 불 꺼진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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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주소》 — 연재 44화

마을은 크지 않았다. 골목 셋에 서른아홉 가구. 차로 돌면 십 분이 안 걸리는 동네였다.

외증조모는 골목마다 길을 알려줬다. 여기서 꺾어라. 저 집 앞에서 잠깐 서라. 나는 그대로 몰았다. 등록에 없는 경유지가 아홉 군데였다. 저쪽 규칙 위반인지 아닌지 이제 알 수 없었고, 알 필요도 없다고 정했다. 뒷좌석의 승객이 원하는 길이 오늘 밤의 등록 경로였다.

첫 번째로 선 집 앞에서, 외증조모는 창을 조금 내려달라고 했다. 나는 내렸다. 외증조모는 열린 창틈으로 그 집 마당을 향해 말했다.

"순댁이. 나 간다."

불 켜진 창 안쪽에서 대답은 없었다. 대신, 그 집 창의 불이 스르르 어두워졌다. 꺼진 게 아니라 저녁이 끝나고 잠자리에 드는 집처럼, 천천히.

"김씨 큰집이야, 저기가." 외증조모가 나한테 설명했다. 관광 안내가 아니라 소개였다. 우리 손주한테 이웃을 소개하는. "저 집 셋째가 그 밤에 우리 지붕에 제일 먼저 배를 대줬어. 지난달엔가, 그 집 손주가 여길 다녀갔어. 취해서 왔더라. 지 할애비 마루에 앉았다 갔어."

내 손님들 중 하나였을 거다. 나는 내가 태웠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 얼굴들이 이 골목의 마루들과 이어졌다.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 외증조모는 집집마다 이름을 부르고, 간다고 말했고, 그때마다 불이 하나씩 저녁을 끝냈다. 어떤 집 앞에서는 오래 있었다. 어떤 집 앞에서는 짧게. 담이 무너진 집 앞에서는 혀를 찼다. 저 집은 여태 담을 안 고치고, 하면서. 삼십 년 물속에서 담 걱정을 해온 목소리였다.

"할머니." 네 번째 골목에서 나는 물었다. 물어도 되는 것 같아서. "이 불들, 할머니가 켜두신 거예요?"

"내가 켰지." 외증조모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였다. "빈 마을이 캄캄하면 쓰나. 다녀가는 애들이 지 집을 못 찾아. 지붕만 보고 어느 집인지 어떻게 알아. 불이 켜져 있어야 마루를 찾지."

성묘 오는 후손들을 위한 가로등이었다. 삼십 년 치 저녁을, 이 분은 마을 전체에 켜두고 있었다.

"인자 내가 가면 켜둘 사람이 없잖아." 외증조모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인사하고 끄는 거야. 한 집씩. 문단속하고 가야지."

우리는 마을을 다 돌았다. 서른여덟 집의 불이 차례로 저녁을 끝냈다. 마지막 골목을 나올 때 마을은 어두웠다. 무서운 어둠이 아니었다. 다들 잠든 시골 밤의 어둠이었다.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이 마을이 밤을 맞는 거였다.

불이 남은 집은 하나였다. 19-4. 외증조모의 집.

"우리 집은 나중에." 외증조모가 말했다. "마을 어귀부터 가자. 회관 앞에."

마을회관은 어귀의 제일 큰 건물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스피커 달린 기둥. 외증조모는 여기서는 내리겠다고 했다.

나는 굳었다. 내리시게 하면 안 된다. 아니, 그건 내리게 해달라는 데서 내려주지 말라는 규칙이고, 그건 승객이 홀린 경우고, 이건. 판단이 안 섰다. 백미러를 봤다. 한 번. 두 번. 외증조모는 백미러 속에서 나를 마주 봤다. 홀린 눈이 아니었다. 또렷한, 우리 집 눈이었다.

"기사 양반." 외증조모가 말했다. 손주가 아니라 기사를 불렀다. 일부러. "손님이 도착지 앞두고 짐 찾으러 잠깐 내리겠다는 거야. 회관에 두고 온 짐이 있어. 같이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짐이야."

짐이 있다는 말은 규칙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운전석은 기사의 자리고, 기사는 운전석에 있을 때만 기사다. 그런데 대리기사는 원래 손님 짐도 실어드리는 직업이다. 트렁크에 골프백을 싣고, 마트 봉지를 싣고.

나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비상등을 켰다. 잠깐 정차의 표시. 이쪽 세계 습관이었다.

"제가 들게요. 어디 있어요?"

— 4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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