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25화. 새벽 세 시의 직원
《없는 주소》 — 연재 25화
새벽 두 시 반에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네 번째 통화였다.
"네, 기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목소리. 나는 이번엔 운행 문의라는 절차를 생략했다.
"지난번에 물으셨죠. 제가 몇 번째냐고. 그거 여쭤보려고 걸었어요. 저, 몇 번째예요?"
키보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조회할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침묵 끝에 대답이 왔다.
"기록상, 여섯 번째요."
여섯 번째.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볼펜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을 거다.
"앞의 다섯 분은 어떻게 됐어요?"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말씀드릴 수 없는 거예요, 모르시는 거예요?"
"…둘 다요. 아는 부분은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몰라요." 상담원은 자기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잠깐 쉬었다가 이었다. "기사님. 하나만 여쭐게요. 요즘도 노트 쓰세요?"
손이 멈췄다. 노트 얘기를 이 사람한테 한 적이 없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쓰세요, 계속. 종이는 서버가 아니니까." 내가 노트 첫 장을 쓰던 밤에 했던 생각과 토씨까지 같은 문장이었다. "기록이 지워지는 일에는 기록이 무기예요. 앞의 분들 중에 노트를 쓴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제일 멀리까지 갔어요."
멀리까지 갔다는 게 좋은 뜻이에요, 나쁜 뜻이에요, 라고 물으려는데 상담원이 먼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세 시가 다 돼서요."
"세 시가 되면 뭐가 달라져요?"
"교대요." 상담원은 처음으로 농담 같은 걸 했다.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다. "다음에 물으실 게 있으면 새벽 세 시 전에 전화 주세요. 세 시 넘으면, 받는 게 제가 아니에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시계를 봤다. 두 시 오십칠 분이었다.
다음 날 낮에 나는 다른 실험을 했다. 점심시간에 콜센터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상담원 연결을 부탁하고, 물었다. 새벽 상담해주시는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성함을 알 수 있냐고. 새벽 두세 시에 여러 번 통화했다고.
낮 상담원은 친절하게 조회해줬다.
"기사님, 저희 야간 상담은 열한 시에 종료되고요, 이후 시간대는 ARS 자동안내로 전환됩니다. 새벽 상담원은… 저희 센터에 없는데요."
"제가 통화를 했어요. 여러 번요. 여자분이고, 목소리가—"
"통화 기록 확인해드릴게요. 기사님 번호로 조회하면… 음." 키보드 소리가 길어졌다. "이상하네. 발신 기록은 있는데, 상담 배정 기록이 없어요. ARS에서 종료된 걸로 나와요. 통화 시간이 사 분, 칠 분… 기사님, ARS를 칠 분 동안 들으셨어요?"
아니요, 사람이랑 통화했어요, 라는 말을 나는 삼켰다. 이 대화의 끝을 알 것 같아서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하고 끊었다.
쉼터에서 박씨한테 이 얘기를 했다. 박씨는 놀라지 않았다. 이 양반은 이제 내 얘기에 놀라는 법이 없다.
"새벽 목소리랑 통화가 된단 말이지." 박씨는 오히려 그 부분을 곱씹었다. "나 때는 무전이었어. 새벽 세 시 전에 무전 채널에 잡음이 걷히는 때가 있어. 그때 물으면 대답해주는 목소리가 있었어. 여자 목소리."
"같은 사람이에요?"
"이십 년 전이랑 같은 사람이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 박씨는 커피를 마셨다. "근데 목소리는 같아."
나는 노트에 유정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이름을 안 건 통화 초기였다. 상담원 매뉴얼대로 자기 이름을 댔었다. 상담원 유정입니다. 그때는 흘려들었던 이름이, 이제 노트에서 제일 이상한 항목이 됐다.
유정. 회사에 없는 직원. 이십 년 전과 같은 목소리. 세 시에 교대하는 사람. 내 노트를 아는 사람.
그리고 앞의 다섯을 아는 사람.
노트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었다.
이 콜에는 기사만 있는 게 아니다. 상담원도 있다.
배차가 있는 곳에는 관제가 있다. 나는 관제와 통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 그 관제는 세 시 전까지만 이쪽 편이다.
— 2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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