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14화. 여섯 번째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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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주소》 — 연재 14화

여섯 번째 손님은 처음부터 울고 있었다.

끝자리 삼백 원짜리 콜이었다. 출발지는 시내 이자카야, 목적지는 대학가 원룸촌. 손님은 이십 대 중반 여자였고, 혼자였고, 가게 앞 계단에 앉아 휴지 뭉치를 쥐고 있었다. 우는 손님은 드물지 않다. 새벽엔 우는 손님이 삼분의 일이다. 나는 평소대로 목적지를 확인하고 출발했다.

손님은 뒷좌석에서 조용히 울다가, 울음이 잦아들 때쯤 말을 시작했다. 취한 사람들은 기사한테 말한다. 기사는 내일이면 없는 사람이라서 말하기 좋은 상대다.

"기사님. 꿈이 유전이 돼요?"

글쎄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꿈 얘기를 시작하는 손님은 길게 간다.

"할머니가 자꾸 꿈에 와요. 돌아가신 지 오 년 됐는데. 근데 이상한 게, 엄마도 같은 꿈을 꾼대요. 할머니가 대문 앞에 서서, 집에 가자고. 손을 이렇게 내밀면서." 손님이 백미러 속에서 왼손을 내밀어 보였다. "근데 그 대문이, 우리가 아는 집이 아니에요. 엄마는 안대요. 엄마 어릴 때 살던 집이래요. 물에 잠긴 동네."

핸들 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목소리를 평평하게 유지했다.

"물에 잠긴 동네요."

"댐 만들면서요. 엄마 고향이에요. 저는 가본 적도 없는데, 꿈에서 그 집 대문을 알아보겠는 거예요. 이상하죠. 사진도 몇 장 없는데." 손님은 코를 훌쩍였다. "오늘 엄마랑 통화하다가 싸웠어요. 엄마가 그 얘기 그만하래요. 할머니 꿈 얘기만 하면 화를 내요. 화내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건가."

나는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렸고, 물을지 말지를 정해야 했다. 물으면 나는 취객의 넋두리를 듣는 기사가 아니라 조사하는 사람이 된다. 선을 넘는 거다. 나는 넘었다.

"그 동네, 혹시 적동리예요?"

백미러 속 손님이 굳었다. 취기와 눈물 사이로 경계가 올라왔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저희 어머니도 그쪽 분이셔서요. 청수호 얘기 나오면 그 동네더라고요."

경계가 풀리는 데는 그거면 충분했다. 아, 그러시구나. 손님은 오히려 반가워했다. 세상에, 이런 데서 동향을 만나네. 엄마가 들으면 신기해하겠다. 손님의 외가는 적동리에서 나와 운평 서쪽 동네에 정착했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평생 물가 근처에 안 갔고, 생선도 민물고기는 안 드셨다고 했다.

"할머니 장례 때요." 손님은 이제 울지 않고 말했다. "화장하고 산에 모셨거든요. 근데 엄마가 그러는 거예요. 할머니는 산을 싫어하셨는데, 하고. 그럼 어디 모시냐니까 엄마가 대답을 못 했어요. 강에 뿌리자는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우리 집안은. 물이 무서우니까. 근데 웃긴 게 뭔지 아세요? 무서워하면서 다들 물 꿈을 꿔요. 엄마도, 이모도, 저도."

원룸촌에 도착할 때까지 손님은 집안 얘기를 했다. 나는 들었다. 검수하듯 들었다. 외탁이라 얼굴이 외할머니를 닮았다는 것. 집안 제사 때 상에 꼭 미역국이 올라간다는 것. 미역국 대목에서 나는 누나의 꿈을 생각했다.

손님은 취해서 그 주소를 부르지는 않았다. 끝까지 안 불렀다. 대신 내릴 때 이상한 말을 했다. 결제하고, 문을 열다가, 반쯤 돌아서서.

"기사님도 꿈 꾸세요?"

"…무슨 꿈이요?"

"대문 꿈이요." 손님은 취한 사람의 확신으로 말했다. "동향이면 꾸실 텐데. 우리 다 꾸거든요."

손님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렸다. 왼쪽 소매는 젖어 있지 않았다. 이번 손님은 그 콜의 손님이 아니었던 거다. 그냥 취한 동향 사람. 그런데 그 콜의 손님들보다 더 많은 걸 알려주고 갔다.

원룸에 와서 노트를 폈다. 손님 데이터가 아니라 다른 페이지를 만들었다. 제목을 뭐라고 붙일까 하다가 그냥 이렇게 썼다. 집안들.

김 부장네: 외가 적동리. 어머니가 그 얘기만 나오면 욺.
오늘 손님네: 외가 적동리. 삼대가 같은 꿈. 물 금기.
우리 집: 외가 적동리 19-4. 금기 세 개. 누나도 꿈.

세 집을 적어놓고 보니 패턴이 하나 나왔다. 겁내는 건 부모 세대고, 꿈꾸는 건 전부고, 불려가는 건 자손들이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무서움은 옅어지고 끌림은 남는다. 무서움은 겪은 사람 것이고, 끌림은 피에 적힌 것이라서 그런가.

나는 대문 꿈을 꾼 적이 없다. 아직은. 그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노트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만 적었다.

나는 꿈 대신 콜을 받는다.

— 1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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