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36화.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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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36화

몫은 그날부터 계속 삼백이었다.

병원에서는 예람이 수치가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의사가 고개를 갸웃할 만큼 빨랐다. 젊어서 그런가 봐요, 라고 의사는 말했고, 예람이는 오랜만에 밥을 남기지 않았고, 나는 그 모든 좋은 소식들이 무서웠다.

문에 대고 부탁을 했고, 다음 날 몫이 절반이 됐고, 그 주에 예람이가 좋아졌다.

세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인과가 보인다. 보이는 인과를 부정하는 건 이제 내 방식이 아니다. 부탁이 들어진 거다. 이십 년 묵은 규칙이, 문 앞에서 무릎 안고 한 말 한마디에 움직였다.

기뻐해야 했다. 실제로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엔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안도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계부를 펴면, 회계하는 사람의 본능이 물었다.

줄여준 몫은 어디로 갔나.

이 집의 장부는 한 번도 나한테 덜 받은 적이 없다. 밀리면 배로 받고, 물건이 없으면 시간으로 받고, 못 받으면 따라와서 받는 장부다. 그 장부가 갑자기 절반을 할인해줬다. 할인이 아니라면, 이건 다른 계정으로 옮겨 적은 거다. 분개(分介)라는 걸 배운 적 있다. 차변이 있으면 대변이 있다. 뭔가가 줄었으면, 어딘가가 는 거다.

어디가 늘었는지 나는 찾아다녔다. 시계를 다 확인했다. 정상. 수량표 전 품목 정상. 회사 짐은 정리해서 가져온 뒤였고, 이상 없음. 달력 정상. 내 몸도, 아는 한, 정상.

목요일에 예람이한테서 문자가 왔다. 새벽에 온 문자였다.

"나 어젯밤에 언니 꿈 꿨어."

이어서 긴 문자가 왔다. 예람이가 언니 꿈을 꾼 건 삼 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꿈에서 언니가 병실에 왔다고 한다.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서, 예람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반찬 얘기를 하고,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 갔다고. 가면서 딱 한마디를 남겼다고 했다.

"고맙대. 나한테."

예람이는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울면서 깼다고 했다. 좋은 꿈이잖아, 라고 답장을 보내면서 나는 손이 차가워졌다.

고맙다는 말은 받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언니가 예람이한테 뭘 받았나. 삼 년 치 밥? 그건 늘 있던 거다. 새로 받은 게 있어야 새로 고마울 수 있다. 최근에 이 집에서 언니 쪽으로 넘어간 게 뭐가 있나. 나는 장부를 뒤지는 심정으로 그 주를 복기했고,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 부탁. 예람이를 데려가지 말라는.

부탁은 공짜가 아니다. 이 집에서는 아무것도 공짜가 아니다. 나는 뭔가를 지불했는데 영수증을 못 받은 상태였다. 그게 이 평온의 정체였다.

금요일 밤에 나는 다시 문 앞에 앉았다. 이번엔 밥도 없이, 그냥.

"고마워요. 예람이 좋아지고 있어요."

조용했다.

"그런데 하나만 물을게요. 줄여준 몫은… 어디로 갔어요? 내가 뭘 낸 거예요?"

문 너머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쿵쿵 무서운 소리가 아니었다. 사각, 사각, 하는 소리였다. 종이 위에 연필 가는 소리. 몇 초 이어지다 멎었다. 뭔가를 적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알았다. 매일 밤 내가 내는 소리니까. 가계부 쓰는 소리.

저쪽에도 장부가 있다.

방으로 돌아와서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무서웠냐고 물으면, 무서웠다. 그런데 표면이 다른 무서움이었다. 그건 나를 해치려는 소리가 아니었다. 대답이었다. 네 질문은 접수됐고, 계산은 진행 중이고, 결과는 장부가 말해줄 거라는. 이 집에서 제일 성실한 회계사가 문 너머에 있고, 나는 방금 그 사무실 문을 두드린 거다.

답은 며칠 뒤에 왔다. 답이 어떻게 왔는지는 다음에 적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을 힘밖에 없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부탁 1건 접수·이행 확인(예람 회복).
대금 청구서: 미도착.
문 너머에 장부 있음. 기록자 있음.

— 3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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