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35화. 혼자의 집
《동거인》 — 연재 35화
예람이 입원 이 주차. 혼자의 집은 이렇게 돌아갔다.
아침 여섯 시 반 기상. 우유 확인, 육백 소실 확인, 수량표 기록. 출근 전에 마트에 들러 우유 두 팩과 계란을 산다. 저녁에 채워놓고, 밤에는 병원에 들렀다가, 새벽에 예람이 대신 밥을 차린다. 쳐주지 않는 밥이라는 걸 알면서도 차렸다. 안 차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계산도 아니었다. 그냥, 삼 년을 이어진 일을 내 대에서 끊고 싶지 않았다.
가계부의 공과금 항목은 두 배가 됐다. 월 십육만 원 상당. 인턴 월급으로 월세 반, 관리비 반, 두 사람 생활비에 두 배의 몫. 셈이 안 맞는 살림이 됐다.
그 주에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 결과가 나왔다. 안 됐다. 티오가 없다고 했다. 팀장님이 미안한 얼굴로 추천서는 잘 써주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절반은 진심이었다. 회사 자리는 나를 안 받는데 이 집 자리는 나를 놓지 않는다는 게, 퇴근길 버스에서 이상하게 웃겼다. 웃다가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버스라 다행이었다.
이상한 건, 그 두 주 동안 집이 무섭지 않았다는 거다.
무서울 일은 오히려 늘었다. 몫은 두 배고, 방문은 하루 두 번이고, 나는 혼자다. 그런데 아침마다 이상한 것들이 있었다. 창고방 문 앞에 빈 우유팩이 나와 있었다. 헹궈서, 말려서, 납작하게 접혀서. 분리수거하라고 내놓은 것처럼. 처음엔 하나였고, 며칠 뒤부터 둘이었다. 두 배의 몫만큼.
어느 날은 문 앞에 내 볼펜이 놓여 있었다. 일주일 전에 잃어버린, 가계부 쓰는 볼펜. 회사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거였다.
살림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 말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다. 나는 채우고, 그건 치우고. 나는 잃어버리고, 그건 찾아주고. 6화에서 처음 봤던 그 정서가, 혼자가 되니까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무서움의 자리에 다른 게 들어앉았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 식구라는 단어를 나는 아직 아꼈다.
이 주째 되던 밤에 나는 규칙에 없는 일을 했다.
새벽 밥을 차리고, 물러나는 대신 문 앞에 남았다. 예람이가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의례의 말이 아니라 내 말을 했다. 수칙 5번, 말을 걸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도. 나는 그 항목을 알면서 어겼다. 알면서 어기는 건 처음이었다.
"언니."
문 너머는 조용했다.
"예람이 아직 병원이에요. 검사 수치가 계속 안 좋대요." 나는 무릎을 안았다. 예람이 자세였다. "몫이 두 배가 된 거, 무슨 뜻인지 알아요. 노트 읽었어요. 자리 준비하시는 거잖아요."
말이 되어 나오니까, 이 주 동안 목에 걸려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예람이 데려가지 마세요."
문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보일러 소리, 내 숨소리. 나는 오 분을 채우고, 밥을 치우고, 내 방으로 왔다. 어긴 규칙의 값이 뭘지 몰라서 그 밤은 오래 뒤척였다. 시계가 늦어질까. 뭐가 사라질까. 나까지 계산에 들어갈까.
아침에 제일 먼저 창고방 앞을 봤다.
빈 우유팩이 나와 있었다. 두 개가 아니라 한 개였다.
냉장고를 열었다. 우유가 삼백만 비어 있었다.
두 배가 하루 만에 절반이 된 거다. 밀린 것도, 벌충도 없이. 나는 냉장고 앞에 서서 그 숫자를 오래 봤다. 규칙이 바뀔 때는 늘 이유가 있었다. 선반을 차렸을 때, 방을 봤을 때. 이번 이유는 하나뿐이다.
내가 말을 걸었고, 그게 들었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수칙 5번 위반. 벌: 없음(현재까지).
익일 몫: 600 → 300.
결론을 적기가 무섭다. 적는다. — 응답이다.
— 36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