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46화. 돌아오는 길
《없는 주소》 — 연재 46화
출발 전에 외증조모는 마지막으로 차 안을 들여다봤다. 대시보드의 사진 액자를 보고, 뒷좌석의 명부를 보고, 나를 봤다.
"소윤이한테 전해라. 미역국은 참기름을 마지막에 둘러야 뜨는 거라고. 지 에미가 그걸 매번 까먹었어."
그게 증손녀한테 남기는 말의 전부였다. 유언 같은 걸 기대한 내가 틀렸다. 이 집안의 사랑은 원래 국 끓이는 법으로 온다.
"할머니는요. 할머니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살던 대로 살지." 외증조모는 몸뻬바지에 손을 닦았다. "불은 다 껐고, 인사도 다 했고. 인자 저녁 차리고, 마루 닦고, 느이들 다녀가면 우유든 뭐든… 아니다, 그건 딴 집 얘기고." 외증조모는 혼잣말을 끊고 나를 봤다. "가라. 두 시 반이다."
문이 닫혔다. 저쪽 문은 저쪽이 닫았다.
나는 차를 돌렸다. 백미러를 봤다. 한 번 — 마당에 선 외증조모. 두 번 — 손을 흔들지 않고, 그냥 서서 보고 있는 외증조모. 배웅은 손을 흔드는 게 아니라 끝까지 서 있는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의 자세.
거기까지였다. 세 번째는 없다.
마을을 빠져나와 물 아래 도로에 올랐다. 시계는 두 시 삼십일 분. 수면까지 2킬로미터, 이쪽 물리라면 삼 분. 이쪽 물리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첫 번째 목소리는 1킬로미터쯤에서 왔다.
"도윤아."
어머니 목소리였다. 뒷좌석에서. 정확히는 뒷좌석의 명부 쪽에서.
"도윤아, 뒤 좀 봐봐.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박씨의 강습. 네가 아는 목소리들로 바뀔 거야. 그게 저쪽 마음이 나쁜 게 아니야. 보고 싶은 게 죄냐. 나는 앞을 보며 대답했다. 대답하지 말라는 항목은 없었다. 말 걸지 말라는 건 이쪽에서 거는 거고, 걸려온 말을 받는 건, 받아야 했다. 나는 우리 집 사람이니까.
"엄마."
목소리가 잠깐 멎었다.
"엄마 맞으면, 잘 들어. 나 지금 운전 중이야. 엄마가 그랬잖아. 밤 운전 하지 말라고. 근데 이건 해야 되는 운전이라 하고 있어. 그러니까 엄마가 도와줘. 아들 운전하는데 뒤에서 부르는 거 아니야. 엄마가 제일 잘 알잖아. 조수석에서 불러서 어떻게 됐는지."
뒷좌석이 조용해졌다. 잔인한 말이었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진짜 어머니든 아니든, 그 말은 해야 했다. 진짜라면 알아들을 거고, 가짜라면 물러날 테니까.
오백 미터. 두 번째 목소리가 왔다. 이번엔 누나였다.
"도윤아, 나 소윤이. 나 여기 있어. 병원 아니야, 여기야. 뒤 봐, 응?"
"우리 누나는," 나는 기어를 잡으며 말했다. "지금 병원에서 미역국 두 그릇 시켜놓고 기다려. 참기름 마지막에 두르는 국으로. 누나 목소리 내려면 공부 더 하고 와."
수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쪽에, 흔들리는 은색 천장이. 시계는 두 시 사십육 분.
마지막 목소리는 수면 오십 미터 앞에서 왔다. 이번 건 반칙이었다.
"기사님."
유정의 목소리였다. 내비가 아니라 뒷좌석에서.
"기사님, 세워요. 뭐가 잘못됐어요. 이대로 나가면 안 돼요. 저 좀 봐요. 설명할게요."
발이 브레이크 쪽으로 반쯤 갔다. 유정의 목소리는 삼 년 동안 나를 도와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세우라면. 나는 시계를 봤다. 두 시 사십칠 분. 유정의 말이 떠올랐다. 세 시 전에는 제 목소리에 제가 있어요. 지금은 세 시 전이다. 그럼 진짜 유정인가. 아니다. 진짜 유정이라면 —
진짜 유정은 내비에 있다. 뒷좌석이 아니라.
"당신 유정 씨 아니야." 나는 액셀을 밟았다. "유정 씨는 안내로 말해. 그리고 유정 씨라면 세우라고 안 해. 그 사람이 나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지 알아? 세 시 전에 수면 위로 올라오라는 거였어."
차가 수면을 뚫었다.
물을 뚫는 느낌이 아니라 얇은 막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한순간 세상이 은색으로 꽉 찼다가, 앞유리 가득 밤하늘이 쏟아졌다. 진짜 밤하늘. 이쪽의 별 없는, 구름 낀,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하늘이었다. 타이어가 젖은 노면을 밟는 소리가 났다. 젖은 노면. 소리로 안다. 이쪽 물리의 소리였다.
백미러 속에서 호수가 멀어졌다. 검고 잔잔한, 그냥 호수였다.
시계는 두 시 오십일 분이었다. 내비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유정의 목소리. 이번엔 제자리에서.
"경로를 안내합니다. 목적지, 운평요양병원."
목적지 미정이 채워져 있었다. 명부가 가자는 데가 그 병원이라는 건지, 유정이 아는 건지, 묻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알았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집에서 그 일을 같이 할 사람은 한 명뿐이고, 그 사람은 미역국을 시켜놓고 있다.
"안내 시작합니다." 유정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리고 매뉴얼에 없는 한 문장이 따라왔다.
"수고하셨어요, 기사님."
— 4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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