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38화. 재배차
《없는 주소》 — 연재 38화
D-3. 나는 청수정보에 다시 갔다. 출발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노인은 이번에도 놀라지 않고 문을 열어줬다. 컨테이너 안은 그대로였다. 서버의 초록 불, 벽의 노. 나는 인사를 생략하고 물었다.
"십사 년 전에도 예약이 있었죠."
노인은 나를 한참 보다가, 책상 아래에서 궤짝을 꺼냈다. 안에 장부가 쌓여 있었다. 대학노트, 업무일지, 제일 오래된 건 한지로 묶은 치부책 같은 것. 삼십 년 치였다. 노인은 그중에서 십사 년 전 연도가 적힌 노트를 뽑았다.
"기록은 내가 해. 저건 기계고, 기계는 지우니까." 노인은 나랑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저 기계가 배차를 낼 때마다 여기다 옮겨 적었어. 삼십 년을."
노인은 페이지를 넘겨서 한 곳을 폈다. 그 해 그 날짜. 수몰 기념일. 볼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예약 배차 1건. 픽업: 19-4. 승객란: 김OO.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기사란을 봐." 노인이 말했다.
기사란은 공란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노인의 메모가 몇 줄 붙어 있었다.
"배정 기사 없음. 승객이 기사 아닌 자의 차로 이동 개시. 자정 넘어 국도 진입 확인. 새벽 2시 40분경 — " 그다음 글씨는 눌러 쓰다가 패인 자국과 함께 끊겨 있었다. 그리고 줄을 바꿔 딱 두 단어. "미완료. 반납."
"어르신은 그 밤에 뭘 보셨어요."
"본 건 없어. 여기 앉아서 무전만 들었지." 노인은 장부를 쓰다듬었다. "그 밤에 기계가 이상했어. 밤새 재탐색만 반복했어.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수백 번. 목적지를 잃은 기계 소리를 밤새 들었어. 아침에 뉴스에서 사고를 봤고, 이름을 봤고… 창숙이 딸인 걸 알았지."
노인은 장부를 덮지 않고 나한테 밀었다.
"자네가 알아야 할 건 그다음 페이지야."
다음 페이지에는 몇 달 뒤 날짜로 짧은 기록이 있었다.
"미완료 건 재배차 대기 등록. 조건: 적격 기사 배출 시. 비고: 오래 걸릴 것."
오래 걸릴 것. 십사 년 전에 노인이 적은 그 다섯 글자를 나는 오래 봤다. 그리고 폰을 꺼내 내 예약 화면을 열었다. 화면 구석에 작게 찍힌 운행 번호가 있었다. 처음부터 있었는데 뜻이 없어서 안 보이던 숫자. 장부의 십사 년 전 배차 기록에도 번호가 적혀 있었다.
같은 번호였다.
새 운행이 아니었다. 십사 년 전에 발행돼서, 미완료로 반납되고, 적격 기사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던 그 운행이었다. 어머니가 승객이던 운행. 아버지가 무자격으로 몰다가 국도에서 끝난 운행. 우리 부모님을 데려간 운행이, 십사 년을 기다렸다가, 나한테 재배차된 거다.
"어머니가 승객이었으면," 나는 목소리를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가 가서 할머니를 모셔 왔어야 하는 거였어요? 십사 년 전에?"
"그건 아니야."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네 어머니는 데리러 가는 운행이 아니었어. 그건 그냥… 승객 운행이었어. 딸이 어머니한테 가는. 창숙이가 죽고 두 해 뒤잖아, 그게. 창숙이가 저쪽에 도착하고 나서, 딸을 부른 거지. 얼굴 보자고. 성묘 오라고. 남들 다 다녀가는 그 방문."
노인은 장부의 승객란을 짚었다.
"방문이었으면 아침에 돌아왔을 거야. 소매 젖고, 기억은 반납하고. 다들 그랬듯이. 문제는 기사였어. 그 길은 기사가 몰아야 하는 길이야. 승객 혼자, 혹은 모르는 사람이 몰면 길이 안 열려. 길이 안 열리는데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면…" 노인은 끝을 맺지 않았다. 맺을 필요가 없었다.
전방주시 태만. 가드레일. 단독 사고. 공식 기록의 단어들이 재정렬됐다. 아버지는 졸다가 사고를 낸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열리지 않는 길 앞에서, 꺼진 내비가 미친 듯이 재탐색하는 소리 속에서, 조수석의 아내가 낯선 목소리로 길을 부르는 밤에, 아무 예비지식 없이 핸들을 잡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자네야." 노인이 말했다. "그 사고 이후로 기계가 조건을 바꿨어. 재배차 조건이 '적격 기사'가 된 거야. 그 집 피면서, 젖지 않았고, 운전이 업인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 나기를 기계가 십사 년 기다렸어. 아니지." 노인은 정정했다. "기다린 게 아니라 키웠지. 자네가 대리를 시작한 게 언제야?"
삼 년 전. 누나가 아프고, 빚이 생기고, 밤에 뛰면 빚이 덜 는다는 단순한 계산으로 시작한 일. 그 계산의 어디까지가 내 것이었는지,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노트에 마지막 정리를 했다.
우리 집 운행 기록. 정정판.
1차 운행(14년 전): 승객 어머니(성묘 방문). 기사 무자격(아버지). 결과: 미완료. 사상 2.
대기 14년. 조건: 적격 기사 배출.
2차 운행(D-3): 동일 운행 번호. 기사: 나. 방향: 데리러.
버스 창밖으로 저녁 국도가 흘렀다. 나는 마지막 줄을 적었다.
부모님은 그 길에서 끝났다. 나는 그 길을 끝내러 간다. 같은 길, 같은 번호, 다른 결말. 그게 이 재배차를 받는 유일한 이유다.
— 39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업체는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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