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36화. 예약
《없는 주소》 — 연재 36화
예약 화면은 매일 확인했다. 아침에 눈 뜨면 은행 앱보다 먼저. 일시: 미정. 그 미정이 유지되는 동안은 유예였다.
수요일 면회에서 유예가 끝났다.
누나는 그날 상태가 안 좋았다. 투석 후유증으로 혈압이 널을 뛰어서, 말하다가 자꾸 잠에 빠졌다. 나는 침대 옆에서 사과를 깎으며 누나가 잠들었다 깨는 걸 지켰다. 세 번째로 잠들었을 때였다.
"적동로 19-4…"
사과 깎던 손이 멈췄다.
누나는 자고 있었다. 눈을 감고, 호흡이 느리고. 그런데 발음이 또렷했다. 삼 년 동안 열두 명의 뒷좌석에서 들은 그 또렷함이었다. 취기와 잠과 약 기운. 의식이 무른 틈으로 들어온다던 박씨의 말이 병실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소윤아." 나는 누나 어깨를 잡았다. "누나."
누나가 눈을 떴다. 초점이 돌아오는 데 몇 초 걸렸다.
"어… 나 잤어?"
"뭐라고 잠꼬대했는지 알아?"
"몰라. 무슨 꿈을 꾸긴 했는데." 누나는 이마를 짚었다. "대문 앞이었어. 또 그 대문. 근데 이번엔 대문이 열려 있었어. 마당에 밥상이 차려져 있고. 누가 안에서, 소윤아 밥 먹자, 하고."
누나는 자기 팔을 무의식적으로 문질렀다. 왼팔이었다. 나는 그 동작을 보다가, 환자복 소매를 봤다.
젖어 있었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링거 자국 위로, 물색이 번져 있었다. 나는 간호사를 불렀다. 링거가 샜나 확인해달라고. 간호사는 라인을 다 점검하고 갸웃했다. 새는 데가 없는데요. 소매만 젖었네요. 이상하다, 물 흘리셨어요? 누나는 아니라고 했고, 간호사는 환자복을 갈아다 주겠다며 나갔다.
누나와 나는 서로를 봤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남매 사이엔 있다.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였구나. 다음이."
"아니야."
"도윤아."
"아니라고." 나는 목소리가 커지는 걸 눌렀다. 병실이었다. "누나는 아니야. 누나 순서가 아니야."
"내 팔이 젖었잖아." 누나는 이상하게 침착했다. 병을 오래 앓은 사람의 침착함이었다. 나쁜 소식을 받는 자세가 몸에 붙은 사람. "너희 손님들이랑 같은 거잖아, 이거. 부름 받은 표시라며."
나는 설명해야 했다. 승객과 기사의 차이를, 예약 운행의 방향을, 내가 아는 전부를. 그런데 입을 여는 순간 폰이 울렸다. 알림이었다.
예약 화면이 갱신되어 있었다.
예약 운행 안내
픽업: 적동로 19-4
목적지: 미정
일시: 7일 후 00:00
기사: 배정 완료
일시: 미정이 7일 후로 바뀌어 있었다. 갱신 시각은 방금이었다. 누나 소매가 젖은 그 몇 분 사이.
나는 그 화면을 누나한테 보여줄지 반 초 고민했고, 보여줬다. 우리 남매는 서로한테 숨기다가 일을 키운 전력이 집안 내력만큼 쌓여 있었다. 누나는 화면을 읽었다. 두 번 읽었다.
"디데이가 잡혔네." 누나가 말했다. "내 소매가 젖으니까 날짜가 잡혔어. 이게 무슨 뜻이겠어."
"…재촉이지."
"인질이지." 누나는 정확한 단어를 썼다. 그리고 사과 조각을 하나 집어 먹었다. 이 상황에서 사과를 먹는 배짱은 우리 집안에서 누나만 물려받은 것이다. "웃긴다. 삼십 년을 기다린 분이 일주일을 재촉하네."
"누나 지금 농담이 나와?"
"농담 아니면 뭘 해." 누나는 사과를 씹으며 창밖을 봤다. "도윤아. 나 하나만 묻자. 너 갈 거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게 대답인 걸 누나는 알았다.
"그래."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건 말리지 않을게. 엄마라면 말렸겠지만 나는 엄마가 아니고, 말려서 될 일이 아닌 것도 알겠고. 대신 조건이 있어."
누나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하나. 다 말하고 가. 어디로 가서 뭘 하는 건지, 아는 대로 전부. 나한테 숨기고 가면 나는 그 밤에 여기서 미쳐버릴 거야. 둘." 누나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처음으로. "돌아와. 부모님은 그 길에서 못 돌아왔어. 우리 집에서 그 길을 두 번 미완으로 만들지 마."
나는 두 조건에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과 접시를 누나 쪽으로 밀었다. 많이 먹으라고. 이식 순번 오면 수술 버텨야 하니까. 누나는 사과를 집으며 픽 웃었다.
"너는 꼭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 걱정을 영양제처럼."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주차장에서 하늘을 봤다. 도시의 밤하늘엔 별이 없고, 대신 아파트 불빛들이 있었다. 집집이 켜진 불. 물 밑에도 저런 게 있다고 조씨는 말했다.
칠 일. 나는 폰의 예약 화면을 한 번 더 보고, 달력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았다. 표시할 필요가 없는 날짜라서.
— 37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업체는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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