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34화.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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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주소》 — 연재 34화

일요일 밤에 나는 노트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첫 장부터. 김 부장의 젖은 소매부터, 어제 적은 박씨의 문장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검수 일의 마지막 단계는 전수 재검이다. 데이터가 다 모였을 때 처음으로 돌아가서, 알게 된 눈으로 다시 보는 것. 그러면 같은 데이터가 다른 그림을 그린다.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첫 장의 김 부장. 다음엔 꼭 데려다줘요. 삼 년 전엔 협박으로 읽었다. 지금 읽으니 부탁이었다. 외갓집이 물에 잠긴 애가 어른이 되어, 취한 밤에만 용기가 나서 하는 부탁. 남들은 외갓집 가서 참외 먹고 왔다는데 우리는 갈 데가 없으니까, 라던 낮의 김 부장과 같은 사람의 말.

간호사 손님. 집이요. 외갓집이요. 물기 있던 발성. 무서운 목소리가 아니라 우는 목소리였다.

창밖에 물이 튄다던 손님. 노 젓는 소리를 듣던 손님. 그 사람들은 홀린 게 아니라 겹쳐 있던 거다. 이쪽 강변북로와 저쪽 물가 길에. 반은 여기, 반은 거기. 취기가 몸을 무르게 하면 피가 기억하는 길이 겹쳐 온다.

엄마, 다 왔대, 하던 손님. 그 밤 내 차 뒷좌석은 삼십 년 만의 모녀 동승이었다.

나는 노트 여백에 삼 년 만에 정정 기록을 적었다. 검수 용어로 하면 이렇다. 최초 판정: 이상. 재검 판정: 정상 업무. 업무명은 뭐라고 적어야 하나. 볼펜을 들고 한참 있다가, 제일 정확한 단어를 적었다.

성묘.

이 콜은 성묘 배차다. 무덤이 지도에 없는 집안의 성묘. buried가 아니라 submerged인 사람들의. 산 사람은 취해야 갈 수 있고, 가서는 기억을 반납하고 오는. 소매가 젖는 건 저쪽 어른이 배웅하며 왼팔을 잡아주기 때문일 거다. 삼십 년 전 그 밤에 잡았던 그 팔을.

무서움이 없어진 건 아니다. 무서움은 그대로 있는데, 그 옆에 다른 게 나란히 앉았다. 슬픔이라고 하기엔 오래됐고, 그리움이라고 하기엔 내 것이 아닌 것. 제사상 냄새 같은 것. 나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의 계산을 했다.

성묘에는 끝이 있다. 다녀갈 사람이 다 다녀가면 끝난다. 건져진 다섯 어른은 다섯 번의 완주로 돌아갔다. 후손들의 인사도 삼 년째 내 뒷좌석으로 이어졌다. 내 노트의 손님이 열한 명. 확정 세 집, 유력 다섯 집. 망향비의 서른아홉 집이 다 다녀가는 건 아닐 거다. 못 갚은 집들, 부름이 닿는 집들이 도는 거니까.

방문이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는 이미 있었다. 콜 간격이 뜸해지고 있었다. 초반엔 열흘에 한 번이던 게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명단이 소화되고 있는 거다.

다녀갈 사람이 다 다녀가고 나면, 마지막 순서는 정해져 있다.

배차표를 관리하는 쪽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삼십 년짜리 사업의 마지막 공정. 다섯 자리의 인사가 끝나면, 여섯 번째 자리의 주인을 모셔 오는 일. 그 운행에 배정된 기사는 교육이 끝났고, 소매도 젖었고, 이제 노선의 뜻까지 이해했다.

준비가 끝난 기사한테 남는 건 배차뿐이다.

나는 그 주 내내 평소처럼 일했다. 물류센터, 병원, 대리. 이상 콜은 오지 않았다. 3주째 한 건도. 뜸해진 게 아니라 멈춘 거였다. 나는 그 고요를 이제 읽을 수 있었다. 사고 기록을 찾아다니던 무렵의 그 고요와 같은 고요. 배차를 바꾸는 중의 고요가 아니라, 이번엔, 배차가 확정된 뒤의 고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세다가, 문득문득 폰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콜을 기다리는 건지 두려워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박씨 말이 맞았다. 반이 제일 나쁘다. 나는 확정과 미정 사이의 반에 서 있었다.

금요일 밤, 목욕탕에 다녀와서 폰을 열었을 때, 그게 와 있었다.

콜이 아니었다. 알림이었다. 대리 앱에 있을 수 없는 형식의 알림.

「예약 콜」

나는 그 세 글자를 오래 봤다. 대리 앱에 예약 기능은 없다. 대리는 부르면 오는 거지 예약하는 게 아니다. 알림을 눌렀다. 화면이 열렸다.

예약 운행 안내
픽업: 적동로 19-4
목적지: 미정
일시: 미정
기사: 배정 완료

취소 버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화면을 캡처했다. 캡처는 저장됐다. 처음이었다. 이 콜과 관련된 것이 내 폰에 저장된 것은.

지워지지 않는 배차. 그건 정식 발령이라는 뜻이었다.

— 3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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