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31화. 뱃사공
《없는 주소》 — 연재 31화
청수정보는 낮에 갔다. 평일 오후, 해가 제일 높을 때. 그 정도의 예의랄까 조심성은 이제 몸에 배어 있었다.
관리사무소 옆 컨테이너였다. 지난번 일요일에 잠겨 있던 그 사무소 말고, 그 뒤편에 붙은 회색 컨테이너. 문에 작은 아크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청수정보시스템. 그 아래 손글씨로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아니라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용무가 있는 분은 두드리시오.
두드렸다. 세 번. 안에서 느린 발소리가 났고, 문이 열렸다.
주공아파트의 그 노인이 서 있었다.
창숙이네 손주냐고 물었던, 경로당 평상에서 배 이야기를 해준, 왼팔에 네 줄 자국이 있는 노인. 노인은 나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어서 오라는 말도 없이 문을 마저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컨테이너 안은 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앞쪽엔 낡은 책상과 야전침대와 전기포트. 뒤쪽엔 랙에 올라간 서버 한 대가 있었다. 오래된 기계였다. 초록 불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고, 팬 소리가 낮게 돌았다. 그리고 서버 옆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노였다. 나무 노 한 자루가 벽에 세워져 있었다. 손잡이가 손때로 까맣게 반들거리는.
"어르신이… 여기 관리인이세요?"
"관리인이지." 노인은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삼십 년째."
"청수정보가 어르신 회사예요?"
"회사는 무슨." 노인은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털어 넣었다. "이름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어줬어. 세상은 이름 없는 거랑은 계약을 안 하니까. 도장도 팠어. 저기 있잖아."
책상 위에 막도장 하나가 놓여 있었다. 청수정보시스템 대표 인. 나는 커피를 받아 들고, 야전침대 끝에 앉았다. 노인은 책상 의자에 앉아 서버 쪽을 등졌다.
"그날 배를 모셨다면서요."
"경로당에서 다 말했잖아."
"다는 아니셨잖아요. 어르신이 그 뱃사공이라는 건 빼고 말씀하셨죠."
노인은 커피를 저었다. 종이컵 안에서 스틱 돌아가는 소리만 한동안 났다.
"다섯을 건넸어. 그 밤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여섯째를 못 건넜지. 배가 작아서. 물살이 세서. 다 핑계고, 못 건넌 거야. 그 할매가 내 배 뱃전을 잡고 자기 식구들을 밀어 올리는 걸 내 눈으로 봤어. 다 올리고 나서 나를 봤어. 그리고 손을 놨어. 내가 노를 젓는 동안."
노인은 자기 왼팔을 쓸었다.
"뱃사공이 승객을 물에 두고 노를 저은 거야. 그게 나야."
"어쩔 수 없었잖아요. 일곱은 못 뜬다면서요."
"어쩔 수 없었지.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사람을 살게 해주진 않아." 노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이 짓을 해. 삼십 년째. 못 건넌 뱃사공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계속 건네는 거지. 이렇게라도."
노인은 등 뒤 서버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게 뭔지 나도 정확히는 몰라. 처음엔 무전 중계기였어. 댐 공사 때 쓰던 걸 내가 인수했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게 밤에 혼자 일을 해. 채널을 열고, 콜을 흘리고. 나는 그걸 끄지 않았어. 처음 이상한 배차가 나가던 밤에, 나는 알았거든. 저게 뭘 하려는 건지. 누구 일을 하는 건지."
"할머니 일이요."
"그 집 일이지." 노인은 고쳐 말했다. "세월이 흐르고 무전이 없어지니까 저게 알아서 다른 데로 옮겨 탔어. 대리회사 서버로. 나는 회사랑 계약서를 쓰고 이름을 지어주고 도장을 찍었어. 저게 계속 일할 수 있게. 사람들은 시스템은 안 의심해. 시스템엔 이름이랑 주소만 있으면 돼."
나는 서버의 초록 불을 봤다. 일정한 깜박임. 심박 같은 간격.
"그럼 배차를 어르신이 하시는 거예요?"
"아니."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키기만 해. 전기 나가면 발전기 돌리고, 비 새면 지붕 고치고. 배차는 저절로 일어나. 누가 하는지는…" 노인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너도 짐작하잖아."
컨테이너 안이 조용했다. 서버 팬 소리와, 멀리 호수의 물새 소리.
"어르신. 저 여섯 번째래요."
"알아."
"제가 뭘 하게 되는 거예요?"
노인은 한참 만에 일어나서, 벽의 노를 손으로 한 번 쓸었다. 인사 같은 동작이었다.
"삼십 년 전에 내가 못 한 일." 노인이 말했다. "그 밤에 배가 한 번 더 들어갔어야 했어. 물살이 죽고 나서라도. 나는 못 들어갔어. 무서워서. 그 미안한 걸 삼십 년 지고 살았는데, 몇 해 전부터 저 기계가 이상한 배차를 준비하더라. 방향이 반대인 배차를. 나는 그때 알았어. 아, 이제 들어가는 배편이 생기는구나. 내가 아니라 다른 뱃사공이겠구나."
노인은 나를 봤다. 경로당에서처럼, 내 이마와 눈매와 입가를 하나씩.
"보험이 하나뿐인 배편이야. 그 집 피만 탈 수 있고, 젖지 않은 사람만 몰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어."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대답을 못 들을 걸 알면서 묻는 질문이 사람한테는 있다.
"할머니는… 지금 어떤 상태로 계시는 거예요? 삼십 년인데. 물속에서."
노인은 서버의 초록 불을 오래 봤다. 그리고 뱃사공의 대답을 했다.
"물속이 어떤 덴 줄 알아? 나는 평생 물에서 일했어. 물속은 시간이 다르게 가는 데야. 위에서 삼십 년이면, 밑에서는…" 노인은 문을 열어줬다. 오후 햇빛이 컨테이너 바닥에 길게 들어왔다. "밑에서는 아직 그 밤일 수도 있어."
— 32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업체는 모두 허구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