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17화. 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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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주소》 — 연재 17화

박씨한테 노트를 보여줬다.

새벽 세 시 반의 쉼터. 다른 기사 둘이 나가고 우리만 남은 시간에, 나는 노트를 통째로 내밀었다. 손님 데이터 표, 집안들 페이지, 젖은 소매의 두 가설까지. 숨기고 자시고 할 단계는 지났다고 판단했다. 이 노트를 보고 미쳤다고 안 할 사람이 세상에 박씨 하나였다.

박씨는 안경을 꺼내 쓰고 천천히 넘겼다. 다 읽는 데 십오 분이 걸렸다. 다 읽고 나서 안경을 접으며 한 말이 이랬다.

"검수 일 한다더니, 하긴 하네."

그리고 박씨는 난로에 컵을 올려놓고, 이십 년 만에 처음 한다는 얘기를 시작했다. 느리게, 뜸을 들여가며.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이십 년 전에 나도 받았어. 그때는 앱이 아니라 무전 배차였는데, 그것도 순번이 이상하게 오는 콜이 있었어. 지금 네가 받는 그거야. 형태만 다르지. 손님이 자다가 주소를 말하고, 무전기가 혼자 지직거리면서 길을 부르고."

박씨는 컵을 돌렸다.

"나는 세 번짼가 네 번째에 따라갔어. 너처럼 중간에 안 돌리고, 끝까지. 그때는 지금보다 겁이 없었고, 그리고… 이유가 있었어. 이유는 나중에 말할게. 아무튼 갔어. 산길 내려가서, 물 냄새 나는 데 지나서, 끝까지."

"뭐가 있었어요?"

"물가." 박씨는 그 단어를 놓고 한참 있다가 이었다. "새벽의 물가. 호수인지 강인지 모를 물가에 길이 끝나. 내비도 무전도 다 조용해지고. 헤드라이트 앞에 물만 있어."

"그래서요."

"손님이 깼어. 멀쩡하게. 취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로, 고맙습니다 기사님, 하고 내리더라. 그리고 물로 걸어 들어갔어. 신발도 안 벗고. 물이 무릎에 오는데도 걸음이 안 흔들려. 마중 나온 데를 걷는 걸음이었어."

난로 주전자가 끓기 시작했다. 박씨는 불을 줄이지 않았다.

"나는 그걸 운전석에서 봤어. 삼 초인가 오 초인가. 그리고 뛰쳐나가서 잡았어."

"잡았어요?"

"잡았지. 허리까지 들어가서. 그 사람 왼팔을 잡고 끌어냈어."

나는 노트의 가설 페이지를 생각했다. 네 손가락, 팔뚝 안쪽. 박씨의 손 모양이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난로 앞에 펼쳐진, 마디 굵은 손.

"끌려 나오면서 그 사람이 뭐라 그랬는지 알아?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우는 거야. 애처럼. 다 왔는데, 다 왔는데, 하면서. 내가 그 사람을 차에 태우고 병원 응급실에 내려놨어. 저체온으로 사흘 입원했다더라. 살았어. 지금도 살아 있어."

"그게 반만 갔다 왔다는 거예요? 손님을 반만 데려다줘서?"

박씨는 고개를 저었다. 느리게.

"그 사람이 반이 아니야. 내가 반이야."

주전자 김이 컨테이너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날 이후로 콜이 계속 와. 이십 년째. 남들은 몇 번 받고 끝나거나, 끝까지 갔다 오면 다시는 안 온다는데, 나는 계속 와. 일 년에 몇 번씩, 잊을 만하면. 처음엔 왜인지 몰랐어. 한참 뒤에 알았지. 나는 운행을 끝까지 안 했잖아. 손님이 내리겠다는 데서 못 내리게 했잖아."

"그건 잘하신 거잖아요. 사람을 살리셨는데."

"살렸지." 박씨는 부정하지 않았다. "살렸고, 운행은 미완료야. 두 개가 같이 성립해. 그게 이 콜의 지랄 같은 점이야. 사람의 셈이랑 저쪽 셈이 달라. 나는 사람 셈으로는 옳은 일을 했고, 저쪽 장부에는 미납으로 적혔어. 미납 기사한테는 독촉이 와. 콜이라는 형태로, 이십 년째."

"그 손님은요? 그 뒤로 괜찮으세요?"

박씨의 얼굴이 그때 처음 흔들렸다. 반 박자가 아니라 한참 늦게 대답이 왔다.

"매년 그날이 오면, 그 사람이 없어져. 하루.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물가에서 발견돼. 청수호 둘레길에서. 젖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고, 그냥 물가에 앉아 있어. 본인은 기억을 못 해. 가족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그날 밤엔 아예 청수호 주차장에서 대기해. 아침에 모셔 가려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박씨는 컵의 물을 난로에 조금 부었다. 치익 소리가 났다.

"내가 반만 갔다 왔다는 건 그런 뜻이야. 나도 못 끝났고, 그 사람도 못 끝났어. 어중간하게 산 채로, 둘 다 이십 년째 그 물가에 반쯤 있는 거야."

박씨는 일어나서 점퍼 지퍼를 올렸다. 나가기 전에 나를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너는 셈을 잘해야 돼. 네 노트 보니까 셈은 하는 놈이던데." 박씨가 문을 밀었다. "따라가지 말든가, 따라갈 거면 끝까지 가든가. 반이 제일 나빠. 반은 이십 년이야."

문이 닫히고, 나는 혼자 남아 노트에 오늘 들은 걸 적었다. 적다가 마지막에 질문 하나를 적고 오래 봤다.

박씨는 왜 따라갔을까. "이유가 있었어. 이유는 나중에 말할게."

이십 년을 미납으로 사는 사람의 이유. 그게 뭔지 물을 자격이 나한테 생기려면, 나도 뭔가를 걸어야 할 것 같았다.

— 1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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