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16화. 네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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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주소》 — 연재 16화

여덟 번째 손님은 부축이 필요했다.

끝자리 칠백 원. 출발지는 노래방 골목, 손님은 오십 대 남자였고 만취였다. 일행 없이 골목 벽에 기대 있어서, 나는 차에서 내려 손님을 부축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한 달에 몇 번은 있는 일이다. 어깨를 빌려주고, 조수석 아니면 뒷좌석에 앉히고, 안전벨트까지 매준다.

손님의 오른팔을 내 어깨에 걸치고 열 걸음쯤 걸었다. 차 앞에서 자세를 바꾸느라 손님의 왼팔을 잡았다.

잡은 순간 알았다.

젖어 있었다. 셔츠 소매가, 팔꿈치 아래로. 그리고 차가웠다. 겨울 밤공기의 차가움이 아니었다. 그보다 아래의 온도. 흐르는 물이 아니라 고여서 오래된 물의 온도였다. 붙잡은 손바닥으로 그 차가움이 올라왔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뗐다가, 손님이 휘청해서 다시 잡았다.

뒷좌석에 앉히고 벨트를 매주면서 나는 그 소매를 봤다. 취객을 앉히는 각도에서는 소매가 걷히기 마련이다. 손님의 왼쪽 소매가 반 뼘쯤 걷혔고, 손목 위 팔뚝이 드러났다.

자국이 있었다.

멍처럼 보이는데 멍이 아니었다. 색이 너무 규칙적이었다. 팔뚝 안쪽에 네 개, 나란한 줄 모양. 손가락 자국이었다. 누가 그 팔을 움켜쥐었던 자국. 네 손가락이 안쪽이면 엄지는 바깥쪽에 있었을 거다. 잡는 방향을 머릿속으로 재현해보니 답이 하나였다. 아래에서 위로 잡은 손이었다.

나는 벨트를 채우고 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았다. 백미러를 두 번 봤다. 손님은 자고 있었다. 시동을 걸기 전에 나는 내 손바닥을 봤다. 손님 소매를 잡았던 오른손. 말라 있었다. 젖은 소매를 잡았는데 내 손에는 물이 안 묻었다.

마르지 않는 물, 옮지 않는 물.

운행 중에 손님은 예의 그 주소를 말했고, 파란 선이 떴고,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이제 그 순서는 사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다. 무서움에도 순서가 생기면 처리가 된다. 그게 사람의 이상한 능력이다.

손님을 내려주고 나는 집에 와서 노트 대신 검색창을 열었다. 확인할 게 있었다.

익수자 구조법. 물에 빠진 사람을 배 위로 끌어올릴 때.

구조 영상을 몇 개 봤다. 배 위의 사람이 물속 사람을 끌어올릴 때, 잡는 곳은 손목이나 팔뚝이다. 마주 잡으면 손목, 다급하면 팔뚝. 끌어올리는 사람의 네 손가락은 물속 사람 팔뚝 안쪽에, 엄지는 바깥쪽에 걸린다.

내가 본 자국과 같은 방향이었다.

다만 방향이 같으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했다. 잡은 손이 위에, 잡힌 팔이 아래에. 그러니까 그 자국은 물속에서 위로 끌어올려진 팔의 자국이었다.

아니면, 반대거나.

나는 노트를 펴고 두 가지 가설을 다 적었다. 정직하게.

가설 1. 그 자국은 끌어올려진 자국이다. 손님들의 왼팔은 언젠가 물속에서 위로 당겨졌다.
가설 2. 그 자국은 끌어내려지는 자국이다. 손님들의 왼팔을 물속에서 뭔가 잡고 있다.

두 가설의 차이는 방향 하나인데, 뜻은 정반대였다. 구조와 익사만큼 반대였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공통 전제가 하나 있었다. 물속에 손이 있다.

30년 전 물이 예정보다 빨리 들어온 밤. 잔류 신고 한 건. 이상 없음.

나는 백서 복사물을 다시 꺼냈다. 담수 일지의 그 세 줄을 읽고, 노트의 가설 두 개를 읽고, 오래 앉아 있었다. 창밖이 부옇게 밝아왔다. 물류센터 출근까지 세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확인했다. 이불 속에서 내 왼쪽 소매를 걷어봤다. 팔뚝 안쪽. 아무것도 없었다. 매끈한 맨살이었다.

안심이 됐고, 안심이 됐다는 게 이상했다. 자국이 있어야 할 이유가 나한테는 없는데. 나는 그 콜의 손님이 아니라 기사인데.

기사인데, 라고 생각한 데서 잠이 확 깼다.

손님들에게 표식이 있다면, 기사에게는 뭐가 있나.

— 1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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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대리운전#심야#도시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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