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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5화

불안할 때 나는 정리를 한다. 통장 쪼개기, 서랍 칸막이, 라벨 스티커. 어긋나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의 오랜 처방이다. 그래서 그 주에 나는 이 집에서 제일 어긋난 부분을 정리하기로 했다.

몫을 분리하기로 한 거다.

그동안은 내 우유에서 삼백이 줄고, 내 계란에서 두 알이 없어졌다. 내 가계부의 식비 칸이 그만큼 늘 어긋났다. 그게 싫었다. 어차피 나갈 몫이면 항목을 따로 만들자. 나는 마트에서 장을 두 번 봤다. 한 번은 내 것. 한 번은 그것의 것.

싱크대 옆 선반 한 칸을 비웠다. 거기에 몫 전용 물건을 올렸다. 즉석밥 세 개, 화장지 한 롤. 냉장고 안에도 칸을 나눴다. 아래 칸 왼쪽에 몫 전용 우유 1리터 한 팩과 계란 한 줄. 저긴 건드리지 말 것, 이라고 나는 속으로 정했다. 라벨은 차마 못 붙였다. 뭐라고 쓸지 몰라서.

가계부에는 새 항목을 만들었다. 항목명은 오래 고민하다가 그냥 '공과금'이라고 적었다. 전기세 수도세 내듯이 내는 거라고 생각하면 셈이 맞았다. 이 집 월세가 반값인 대신 내는 공과금. 그렇게 적고 나니 처음으로 이 일이 관리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첫날은 완벽했다. 아침에 확인하니 몫 우유에서 정확히 삼백이 줄었다. 내 우유는 그대로였다. 계란도 내 것은 열 알 그대로, 몫 줄에서 두 알. 로그에는 낮 두 시 십사 분 열림 하나.

나는 좀 뿌듯하기까지 했다. 시스템이 돌아갔다.

이틀째 아침에 로그를 열었다. 열림이 두 개였다.

오후 한 시 사십일 분. 오후 두 시 오십삼 분.

두 번 온 거다. 나는 먼저 소비량부터 확인했다. 몫 우유 삼백, 계란 두 알. 정량이었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아무것도 줄지 않았다.

사흘째도 두 번이었다. 한 시 삼십칠 분, 두 시 사십팔 분. 소비는 역시 정량. 두 번째 열림에는 역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가져갈 게 없어서 두 번 오는 게 아니었다. 가져갈 걸 다 가져가고도, 한 번 더 오는 거였다.

나는 그게 뭘 뜻하는지 몰랐다.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차려준 게 좋았나. 몫을 정리해서 따로 차려놓은 게, 그러니까, 마음에 들었나.

호의는 응답을 부른다. 응답이 꼭 고마움인 건 아니다.

그날 저녁 예람이가 선반을 발견했다. 몫 칸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냉장고를 열고 나눠진 칸을 보다가, 나를 돌아봤다. 예람이가 그렇게 정색한 얼굴을 나는 처음 봤다.

"이거 누가 하래."

내가 했는데, 하고 나는 말했다. 어차피 나갈 거 정리한 건데. 뭐가 문제야?

"하던 대로만 해." 예람이 목소리가 낮았다. "정해진 것만. 더 하지도 말고 덜 하지도 말고. 하던 대로."

더 하지도 말고. 나는 그 말에 걸렸다. 덜 하면 안 되는 건 안다. 밀리니까. 그런데 더 하면 왜 안 되는데. 챙겨주는 게 왜 문제가 되는데. 나는 그렇게 물었고,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갔다. 한 달 반 동안 누른 게 그 순간에 올라왔다.

"너는 뭘 아는데? 뭘 아는데 나한테는 말도 안 해주고 하란 대로만 하래?"

예람이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원래는 싸울 때 소리부터 지르는 애다. 예람이는 냉장고에서 몫 우유를 꺼내 원래 자리에 도로 넣었다. 계란도. 선반의 즉석밥도. 내가 만든 시스템을 하나하나 원상복구하면서, 등을 보인 채로 말했다.

"부탁이야. 눈에 띄는 짓 하지 마."

눈에 띄는. 그 말을 예람이는 주워 담지 않았다. 냉장고 문이 닫혔다. 그 소리가 대화의 마침표였다.

나는 그날 밤 남은 것들도 원래대로 돌려놨다. 예람이 말대로 한 게 아니라, 예람이 얼굴 때문이었다. 정색이 아니라 그 밑에 있던 것. 예람이는 화가 난 게 아니라 겁에 질려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로그를 확인했다.

선반은 치웠는데, 열림은 두 개였다. 그다음 날도 두 개. 한 번 늘어난 방문은 도로 줄지 않았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방문 1회 → 2회. 되돌렸는데 안 돌아옴.
규칙은 한 방향으로만 바뀐다.

그리고 나는 인정해야 했다. 이 집의 규칙이 어디서 오는지, 선반 따위로는 알 수 없다는 걸. 규칙의 출처를 보려면 출처가 있는 곳을 봐야 한다는 걸.

이 집에서 내가 안 열어본 문은 하나뿐이다.

— 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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