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39화. 퇴원
《동거인》 — 연재 39화
예람이는 화요일에 퇴원했다. 나는 저녁을 차렸다.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을 굽고, 예람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했다. 이 집에서 누가 누구를 위해 상을 차리는 건 오랜만이었다. 문 앞이 아니라 식탁에.
예람이는 잘 먹었다. 얼굴에 살이 좀 붙어 있었다. 앞당겨 쓴 회복이라는 걸 아는 나만, 그 혈색이 계속 아팠다.
다 먹고 나서 나는 그릇을 치우지 않고 말했다. 치우기 시작하면 못 할 것 같아서.
"너 나가."
예람이가 수저를 내려놨다.
"방 알아봐놨어. 여기서 버스로 사십 분. 너 카페랑도 가까워. 보증금은 내 적금 깨면 돼. 정산은 내가 남아서 해. 네 몫까지 내가 채우는 조건으로 미뤄지는 거, 확인받았어."
준비한 말을 순서대로 다 했다. 예람이는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예람이가 처음 한 말은 예상 밖이었다.
"확인을 받았다고? 어디서?"
문자로. 내가 대답하자 예람이 얼굴이 하얘졌다. 너 그 번호랑 그런 얘길 주고받았어? 언제부터? 예람이는 화를 냈다. 내가 자기를 위해 뭘 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그 창구와 거래를 텄다는 사실에 화를 냈다. 그게 뭔지 알고, 그게 어떻게 시작되는 건지 알고, 언니도 처음엔 문자였을 거라고, 처음엔 다 부탁이고 다음엔 협상이고 나중엔—
예람이는 끝을 못 내고 울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시선을 떨구지도 않고. 나를 똑바로 보면서 울었다. 손바닥 영상을 보던 그 새벽, 노트북 화면 앞에서 울던 그 방식 그대로. 그때 나는 그 눈물이 뭔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오래 미뤄둔 것이 도착한 사람의 눈물. 그때 도착한 건 진실이었고, 오늘 도착한 건 이별이었다.
"싫어." 예람이가 말했다. "나만 나가는 게 어딨어. 그게 어딨어."
우리는 그 밤 길게 싸웠다. 예람이의 논리는 감정이었고 내 논리는 산수였다. 네가 남으면 다음 자리는 너야. 장부상 네 빚이 제일 커. 나는 다섯 달짜리고 아직 이 집이 나를 몫으로 원한 적 없어. 지금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나가는 게 유일하게 셈이 맞아. 예람이는 셈으로 지고 감정으로 버텼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 예람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는? 너는 언제 나와?"
"몫이 끝나면."
"몫이 어떻게 끝나는데."
"몰라. 근데 이 집에서 그걸 처음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이 나야." 나는 문주연의 종이를 생각했다. 필요 없어지면 태우라던. "누군가는 장부를 끝까지 읽어야 할 거 아냐. 나 그런 거 잘해."
예람이는 웃었다. 울면서 웃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이사는 이 주 뒤였다. 예람이 짐은 트럭 반 대 분량이었다. 오 년 산 사람의 짐치고 적었다. 이 집에서 산 세월의 대부분이 짐이 아니라 일이었으니까.
떠나는 날 새벽, 예람이는 마지막 밥을 차렸다. 나는 내 방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전자레인지, 공기, 수저. 문 앞에 놓이는 소리. 그리고 예람이 목소리. 삼 년 동안 미안하다고만 하던 목소리가, 그 새벽엔 다른 말을 했다.
"언니. 나 가. 언니가 가라고 해준 거라고 생각할게. 미안했어. 고마웠어. 밥은… 밥은 지우가 잘해. 나보다 잘해."
그리고 오 분의 침묵. 밥그릇 치우는 소리. 물소리.
아침에 트럭이 왔다. 짐이 다 나가고, 예람이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오 년 신은 현관에서. 예람이가 마지막으로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멈췄다. 나는 예람이 시선을 따라갔다.
창고방 문이 열려 있었다.
활짝이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만큼. 언니가 사라진 날 그 폭만큼. 안쪽은 어두웠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냥 열려 있었다. 삼 년 동안 한 번도 스스로 열린 적 없는 문이.
배웅이었다. 그렇게밖에 읽을 수 없었다.
예람이는 그 문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오래. 그리고 나한테는 인사 대신 이렇게 말했다.
"우유, 초록 팩이 유통기한이 길어."
알아, 하고 나는 대답했다. 가. 연락하고.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혼자 남았다. 거실을 돌아보니 창고방 문은 어느새 닫혀 있었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 이 집에서 제일 오래된 소리.
나는 소리 내서 말했다. 혼잣말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아니까.
"둘 남았네요, 우리."
셋이지, 하고 스스로 고쳤다. 방 안의 언니까지.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한예람 퇴거. 5년 1개월. 정산: 서지우 앞으로 이체.
창고방 개문 1회(자발). 해석: 배웅.
잔류 인원: 3.
— 40화(최종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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