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33화. 구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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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33화

그 주에 나는 구인글을 썼다.

올릴 생각은 없었다. 없다고 여기 적어두는 건, 쓰는 동안의 나를 백 퍼센트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알아야 했다. 이 글을 쓴다는 게 어떤 일인지. 나가는 문의 손잡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잡아보기 전엔 모르니까.

노트북을 열고 제목부터 썼다.

역세권 투룸 셰어, 시세 반값, 여성만.

다섯 달 전에 내가 클릭한 그 제목이었다. 토씨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본문을 쓰기 시작했다. 채광 좋고, 역 오 분, 관리비 포함, 조용한 동네. 전부 사실이다. 이 집의 장점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게 이 글의 제일 나쁜 점이다. 거짓말로 꾀는 글이라면 쓰는 사람이 최소한 자기가 나쁘다는 건 안다. 이 글은 한 줄도 거짓 없이 사람을 속인다.

룸메이트는 조용하고 깔끔한 직장인입니다, 라고 쓰다가 나는 손을 멈췄다.

다섯 달 전 이 자리에 앉아 이 문장을 쓰려던 예람이를 생각했다. 못 쓰고 몇 달을 미루던 예람이. 그리고 어느 날 이 글이 완성된 채로 인터넷에 나타났을 때, 무서움보다 살았다 싶은 게 컸다던 예람이.

이제 나는 그 마음을 안다. 쓰는 동안 알았다. 문장을 하나 완성할 때마다 아주 조금씩 가벼워졌다. 이 글이 완성되면 나는 나갈 수 있다. 우유도, 낮 시간도, 새벽 두 시 오십일 분도, 전부 이 글을 읽고 올 누군가의 것이 된다. 그 가벼움은 진짜였다. 진짜라서 끔찍했다.

나는 조건을 쓰는 칸을 만들어봤다. 3번 항목을 알면서도. 알고 오는 사람은 자리가 받지 않는다. 그래도 썼다. 이 집에는 매일 채워야 하는 몫이 있습니다. 우유 300, 낮 1시부터 3시까지 외출. 쓰고 읽어보니 미친 사람의 글이었다. 지우고 다시 쓰니 멀쩡한 글이 됐고, 멀쩡한 글이 되는 순간 그건 덫이 됐다. 정직하면 글이 못 되고, 글이 되면 정직하지 못하다. 이 구조는 그렇게 설계돼 있었다.

새벽에 예람이가 퇴근해서, 식탁에 앉아 있는 나와 노트북 화면을 봤다. 예람이는 화면을 한참 읽었다. 화내지 않았다. 대신 옆에 앉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 문장에서 멈췄었어. 룸메이트는 조용하고, 까지 쓰고."

우리는 새벽 세 시에 그 얘기를 했다. 각자 어디까지 썼는지. 어느 문장이 제일 안 써졌는지. 예람이는 '여성만'에서 오래 걸렸다고 했다. 그 단어를 쓰는 순간 대상이 좁혀지고, 대상이 좁혀지면 얼굴이 상상되고, 얼굴이 상상되면 못 쓰겠더라고. 나는 '반값'이 제일 안 써졌다고 했다. 내가 걸려든 미끼를 내 손으로 다는 기분이라서.

"언니도 이랬겠지." 예람이가 말했다. "나 들일 때. 언니는 심지어 나를 아는 채로 들였잖아. 모르는 사람도 못 쓰겠는데."

언니는 어땠을까. 후배를 자기 집에 들이면서, 조건은 우유만 채우면 된다고 말하면서, 수칙 두 번째 장을 이미 읽은 사람으로서. 나는 언니의 가계부를 떠올렸다. 잘 먹는다, 다행이다. 그 사람은 다정한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다. 다정한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이 침묵을 지키는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우리가 증거다. 예람이는 다정하다.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이 글을 중간까지 썼다.

이 시스템의 제일 무서운 점은 괴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거다. 지친 사람이면 된다.

나는 글을 저장하지 않고 껐다. 껐다는 걸 분명히 적어둔다. 파일은 없다. 임시저장도 안 했다.

다만 끄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이 있다. 글 맨 아래에, 올리는 글이라면 절대 쓸 수 없는 한 줄을 적어봤다. 나한테 하는 말인지, 다섯 달 전의 나한테 하는 말인지, 언젠가 이 글 비슷한 걸 읽게 될 누군가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는 한 줄.

"반값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없는 할인이 제일 비싼 할인입니다."

그 줄까지 쓰고 껐다. 예람이는 옆에서 그걸 다 봤고, 아무 말도 안 했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반 컵을 따라 마셨다. 자기 우유를. 자기 몫을. 그게 그 새벽의 마지막 장면이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구인글: 완성 가능. 발행 불가(현재의 나 기준).
확인된 것: 문손잡이는 잡힌다. 잡히니까 무섭다.
예람과 언니에 대해: 용서가 아니라 이해. 이해가 더 무겁다.

— 3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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