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23화. 사흘 밖
《동거인》 — 연재 23화
찜질방에서 사흘을 잤다.
첫날 아침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랑 두유를 샀다. 카드를 댔는데 승인이 났다가 삼 초 만에 취소 문자가 왔다. 다시 댔다. 또 승인, 또 취소. 알바생이 미안해하면서 카드가 이상한가 봐요, 했다. 현금으로 냈다. 회사 가는 길에 은행 앱을 열어보니 취소된 결제 두 건이 내역에 남아 있었다. 취소면 내역에서 사라져야 하는데, 회색 글씨로 남아 있었다. 금액 자리에 금액 대신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산 대기.
은행 앱에 그런 문구는 없다. 캡처해서 고객센터에 보내니 확인해보겠다고 했고, 다시 열어보니 두 줄 다 사라져 있었다. 고객센터는 그런 내역 자체가 조회되지 않는다고 했다.
둘째 날은 회사였다. 탕비실에 사둔 내 컵라면이 하나 줄어 있었다. 서랍 견과는 두 봉. 하루치가 아니라 밀린 이자까지 붙는 것처럼, 나가 있는 날수만큼 폭이 커지고 있었다. 셋째 날엔 찜질방 사물함이었다. 자물쇠 달린 사물함 안에서 세면도구 파우치가 열려 있었다. 없어진 건 없었다. 대신 치약이 눌려 있었다. 끝에서부터 가지런히, 내가 짜는 방식이랑 똑같이. 나는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사람이다. 끝에서부터 짜는 건 내가 아니라, 내 가계부를 배운 것처럼 구는 누군가의 방식이었다.
셋째 날 밤 찜질방 수면실에서 나는 잠을 포기하고 그동안의 기록을 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문제를 지도로 그려봤다. 집을 가운데 두고, 회수가 일어난 지점들을 점으로 찍었다. 편의점, 회사, 찜질방. 반경이 아니었다. 동선이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였다. 원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그려지는 지도.
집이 어디까지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현관문까지라고 답할 거다. 나도 그랬다. 지금 내 대답은 다르다. 집은 내가 있는 곳까지다. 그 집에 관한 한.
예람이한테서는 사흘간 연락이 없었다. 나도 안 했다. 화가 안 풀려서가 아니었다. 풀 화가 어느 쪽을 향해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예람이는 나를 속였다. 그리고 예람이도 속은 사람이다. 언니도 그랬을 거다. 화살표를 그리다 보면 끝이 없고, 끝에는 사람이 아니라 저 방이 있다.
사흘째 밤 열한 시에 문자가 왔다.
"들어와. 네 몫까지 내가 채우고 있는데, 한계야."
나는 그 문자를 오래 봤다. 사과가 아니었다. 애원도 아니었다. 예람이는 정확한 문장을 골랐다. 감정이 아니라 수지로 말하면 내가 움직인다는 걸 아는 문장. 삼 년을 혼자 채운 사람이, 이제 두 사람 몫을 채우고 있다. 내가 없는 동안 내 몫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예람이한테 넘어가 있었다.
나는 답장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결국 이렇게 보냈다.
"내일 아침에 갈게. 우유 사서."
보내고 나서 천장을 봤다. 찜질방 수면실 천장은 낮고, 옆자리 사람들의 숨소리는 제각각이었다. 제각각인 게 좋았다. 정량이 아닌 것들. 나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조금 잤다.
새벽에 깨서 폰을 보니 예람이한테서 답이 와 있었다.
"응."
한 글자.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안 할게. 그 말 할 자격을 잃은 거 같아. 대신 다 말할게. 물어보는 건 뭐든."
가계부 옆 종이는 집에 두고 왔지만, 나는 폰 메모장에 적었다.
집 밖 사흘. 회수 지점: 내 동선 전부.
결론: 나가는 문제가 아니다. 끝내는 문제다.
— 24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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