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22화.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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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22화

다음 날 저녁, 예람이가 알바를 또 뺐다.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그 손을 안다고 말한 날이었다.

"오늘 다 말할게. 물어보지 말고 끝까지만 들어줘."

예람이는 식탁에 앉아서, 물을 한 컵 받아놓고, 이번에도 안 마셨다.

"언니 없어진 날. 나 새벽에 마감하고 들어왔거든. 언니가 없었어. 신발도 있고 가방도 있고 폰도 있는데 언니만 없었어. 그리고 창고방 문이 열려 있었어. 손가락 하나만큼. 그 문은 한 번도 열려 있던 적이 없어. 한 번도."

예람이는 물컵 표면을 보면서 말했다. 시선을 고정할 데가 필요한 사람의 자세였다.

"못 들어갔어. 못 들어가겠더라. 문틈에 대고 언니를 불렀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났어. 그러다 아침이 되고, 나는 문을 닫았어. 열어본 게 아니라 닫은 거야. 그게 내가 한 일의 전부야."

경찰에 신고는, 하고 내가 물으려는데 예람이가 손을 들었다. 끝까지.

"신고하려고 했어. 다음 날 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날 밤에 문자가 왔어. 언니 번호로." 예람이가 폰을 꺼내서, 오래 스크롤을 내리고,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이거야."

삼 년 전 날짜. 새벽 2시 51분.

"나 잘 있어. 찾지 마. 채우던 거 계속 채워줘."

세 문장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몫이 두 배가 됐어. 우유 육백. 계란 네 알. 두 사람 치." 예람이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평평했다. 여러 번 재생해서 닳은 테이프 같았다. "월세에 관리비에 두 배 몫에, 나 혼자였어. 알바를 두 개 뛰었어. 넉 달을 그렇게 했는데 안 되겠더라.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하도 힘들어서 문 앞에 언니 밥을 차려놓고 울었어. 언니 미안하다고. 나 못 하겠다고."

예람이가 처음으로 나를 봤다.

"다음 날 아침에 우유가 삼백만 비어 있었어."

나는 소름이 돋는 걸 참았다. 밥을 차리면 낮 몫이 한 사람 치로 준다. 언니 몫은 문 앞의 밥으로 쳐준다. 먹지도 않는 밥을. 정성을 셈으로 쳐주는 장부가 저 방 안에 있다.

"그때부터 매일 차렸어. 삼 년. 하루도 안 빼먹었어. 빼먹으면 다음 날 낮에 육백이 나가. 시험해본 게 아니라 아파서 못 차린 날 알게 된 거야."

그리고 예람이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남은 얘기를 위해서.

"작년 가을에 몸이 두 번 크게 아팠어. 알바 하나를 잘랐어.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어. 언니 가계부 마지막 장, 너 봤지. 사람을 구하자. 언니도 혼자 하다가 나를 구했어. 나는 그걸 아니까, 나도 구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 구인글을 쓸 수가 없었어. 몇 번을 썼다 지웠는지 몰라. 사람을 어떻게 구해. 이런 데로. 조건도 말 안 해주고."

예람이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는데, 예람이는 닦지도 않고 계속했다.

"그러다 삼월에 네가 연락 왔어. 글 보고 왔다고. 나는 글을 안 올렸는데."

나는 숨을 멈췄다.

"찾아봤더니 글이 있더라. 내가 쓴 것처럼. 우리 집 사진까지 붙어서. 무서웠어. 진짜야, 무서웠어. 그런데 지우야, 나 솔직하게 말할게. 무서운 것보다 살았다 싶은 게 컸어. 네 이름 보고, 동기인 거 알고, 아 됐다, 이제 살았다. 그래서 모른 척했어. 글도, 쪽지도, 다. 네가 운 좋게 반값 방 구한 줄 알게 뒀어."

예람이가 물컵을 밀어놓고, 두 손을 무릎에 놓고, 나한테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각도가 아니라 선고를 기다리는 각도였다.

"너 미안해서 못 봤어, 그동안. 나는 너를 친구라서 부른 게 아니야. 몫이 모자라서 불렀어. 네가 온 게 아니라 내가 널 받은 거야. 알면서 받은 거야."

나는 한참 있다가 일어났다. 화가 났는지 슬펐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두 개는 섞이면 구분이 안 된다. 내 방에 들어가서 가방에 며칠 치 짐을 쌌다. 예람이는 말리지 않았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등 뒤에서 예람이가 딱 한 번 말했다.

"밀린 채로 가면 따라가."

알아, 하고 나는 대답했다. 오늘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역 앞 찜질방 수면실 구석에서 나는 그 밤을 보냈다. 잠은 안 왔다. 천장 무늬를 보면서 나는 예람이가 한 말들을 다시 감았다. 제일 오래 감긴 건 자백의 내용이 아니었다. 물컵이었다. 두 번 다, 예람이는 물을 받아놓고 안 마셨다. 목이 마른데 마시면 안 되는 사람처럼.

문 앞에 놓인 밥도, 안 먹는데 차려야 한다.

이 집 사람들은 다들, 삼키지 못하는 걸 차려놓고 산다.

— 2부 끝. 23화에서 3부 「세 사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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