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21화. 언니의 가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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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21화

언니 짐, 창고방에 있지.

저녁에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예람이는 부정하지 않았다. 사람이 자주 바뀌었다는 이 집에서 짐도 안 빼고 간 사람 얘기를 들은 게 두 달 전이다. 나는 그 짐이 누구 짐인지 이제 안다. 봐야겠어, 라고 했더니 예람이는 오래 생각하다가 조건을 셋 걸었다.

낮은 안 돼. 이불은 건드리지 마. 그리고 문 열 동안 내가 앞에 있을게.

밤 열 시에 우리는 창고방 앞에 섰다. 예람이는 문 옆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새벽마다 앉는 그 자리, 그 자세였다. 나는 그걸 안다는 내색을 안 했다.

방은 지난번 그대로였다. 살구색 커튼, 상자 벽, 좁은 길, 창 밑의 이불. 이불 쪽은 보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눈은 확인부터 했다. 사람 모양의 꺼짐. 그대로였다. 우유팩 탑이 그새 더 높아진 것 같았지만 세지 않았다. 오늘은 셀 게 따로 있었다.

상자에는 매직으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주방. 옷. 겨울. 책. 그 글씨를 보는 순간 알았다. 수칙의 필체였다. 또박또박한, 약간 오른쪽으로 기운.

책 상자를 열었다. 전공책 몇 권, 소설 몇 권, 그리고 맨 밑에서 노트 세 권이 나왔다. 표지에 연도가 적혀 있었다. 나는 첫 권을 열었고, 첫 장에서 이미 알았다. 무릎에 힘이 빠져서 상자 옆에 주저앉았다.

가계부였다.

날짜, 품목, 수량. 우유 300. 계란 2. 쌀 한 컵. 매일. 내 가계부와 항목이 같고, 서식이 같고, 강박이 같았다. 다른 건 손글씨라는 것뿐이었다. 언니는 칠 년 전에도, 오 년 전에도, 하루도 안 거르고 그 집 살림을 적었다. 자기 지출이 아니라, 나가는 몫을.

비고란이 있었다. 드문드문 적혀 있었다.

"안 옴. 내가 집에 있었음. 내일 주의."
"이틀 밀림. 시계로 감. 두 시간 오십 분."
"오늘 문 앞에 팩이 접혀 나와 있었다. 씻어서 말려놨다."
"잘 먹는다. 다행이다."

잘 먹는다, 다행이다. 나는 그 여섯 글자를 오래 봤다. 그건 관리자의 문장이 아니다. 시스템 운영자의 문장이 아니다. 그건 밥 차리는 사람의 문장이다. 애 도시락 싸는 사람의, 입 짧은 식구를 둔 사람의 문장.

두 번째 권, 세 번째 권. 기록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글씨가 흔들린 날이 며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권의 마지막 기록 장에서, 나는 그걸 봤다.

날짜가 있고, 그 아래 품목 없이 두 줄이 적혀 있었다.

"오늘부터는 내가 없어도 되게 해야 한다."
"사람을 구하자."

그리고 그 아래, 다른 날짜와 함께 이름이 하나 적혀 있었다.

한예람.

나는 노트를 든 채로 문 쪽을 봤다. 열린 문틈으로 예람이 옆모습이 보였다. 예람이는 이불 쪽을 안 보고 벽만 보고 있었다.

너 이거 봤어? 하고 나는 물었다. 예람이는 문틈으로 노트 표지를 확인하더니, 시선을 도로 벽에 뒀다.

"…봤어. 언니 없어지고 나서. 짐 정리하다가."

자기 이름이 적힌 걸 봤을 때 어땠어, 라고는 못 물었다. 물으면 나까지 무너질 것 같았다. 대신 나는 마지막 장을 넘겼다.

다음 장은 비어 있었다.

줄만 그어진 빈 페이지. 사람을 구하자, 의 다음 장. 언니의 서식대로라면 거기에는 날짜와 이름이 적혀야 한다. 예람이가 이 노트를 이어받았다면, 예람이 글씨로.

적히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이 페이지에 들어갈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두 달 반 전에, 오후 네 시 사십일 분에, 쪽지 한 통으로.

나는 노트 세 권을 안고 방을 나왔다. 예람이가 일어나서 문을 닫았다. 우리는 그 밤 아무 말도 더 안 했다. 예람이는 새벽에 밥을 차렸고, 나는 못 듣는 척했고, 둘 다 상대가 안 자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언니 가계부 3권. 서식 동일. 강박 동일.
"잘 먹는다. 다행이다." — 부양자의 기록.
마지막 장: "사람을 구하자" + 한예람.
다음 장: 공란.

공란은 비어 있는 게 아니다. 아직 안 적힌 거다.

— 2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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