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20화. 전임자
《동거인》 — 연재 20화
안쪽을 알려면 처음부터 봐야 한다. 나는 내가 이 집에 온 경위를 처음부터 다시 감아보기로 했다.
내 기억은 이랬다. 지난봄에 살던 원룸 월세가 올랐고, 감당이 안 됐고, 방을 알아보다가 자취 카페에서 반값 셰어 구인글을 봤고, 연락했고, 예람이가 대학 동기라는 걸 알고 반가워서 바로 들어왔다. 흔한 이야기. 운이 좋았던 이야기.
폰을 뒤졌다. 석 달 전 기록은 다 남아 있다. 요즘 폰은 아무것도 안 지운다.
삼월 십사일 오후 세 시 오십팔 분. 원룸 집주인 문자. "다음 재계약부터 보증금 오백에 오십오로 조정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 문자를 받고 답장을 안 하고, 그날 저녁 내내 방 앱만 뒤졌던 걸 기억한다. 아무한테도 말은 안 했다. 엄마한테도. 걱정하니까.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네 시 사십일 분. 쪽지 알림.
나는 이 부분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는 '카페에서 글을 봤다'로 저장돼 있는데, 기록은 반대였다. 글이 나한테 먼저 왔다. 처음 보는 계정이 보낸 쪽지 한 통. 인사도 설명도 없이 링크 하나. 운평 자취정보 카페의 게시글이었다. 역세권 투룸 셰어, 시세 반값, 여성만.
나는 그 카페에 가입한 적이 없다. 지금도 아니다. 글을 보려고 그날 가입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글을 '발견'한 게 아니다. 배달받은 거다.
쪽지 보낸 계정을 눌러봤다. 탈퇴한 회원입니다.
글 작성자를 확인했다. 예람이 아이디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아이디. 프로필을 눌렀다. 작성 글 한 개. 그 구인글 하나. 가입일을 봤다. 삼월 십사일. 글을 올린 그날 가입한 계정이었다. 글 하나 올리고 다시는 안 쓴 계정.
게시 시각, 오후 네 시 삼십팔 분.
나는 시각 세 개를 나란히 적었다.
15:58 내 월세 인상 통보.
16:38 구인글 게시.
16:41 나한테 쪽지 도착.
사십 분. 내 월세가 오른 지 사십 분 만에, 나를 위한 방이 인터넷에 생겼고, 삼 분 뒤에 내 앞으로 배달됐다.
우연이라는 단어를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공정하게 따져는 봤다. 구인글이야 아무 때나 올라올 수 있다. 문제는 쪽지다. 가입한 적 없는 카페의 글이, 하필 그날, 하필 나한테.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이거다. 내 월세가 오른 걸 그 시점에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랑 집주인뿐이었다. 나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방을 구하기 시작하기도 전에, 방이 나를 구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예람이한테 이걸 묻지 않았다. 물으면 예람이가 뭐라고 할지 이미 알 것 같아서였다. 준비된 답이 나올 것이다. 빠르고 매끄러운 답이. 나는 준비된 답을 받는 데 지쳐 있었다. 다음에 물을 때는, 준비할 시간을 안 주고 물을 거다.
대신 나는 오래된 질문 하나를 꺼내서 뒤집어봤다. 두 달 동안 나는 '왜 이 집인가'를 물어왔다. 질문이 틀렸다. '왜 나인가'가 맞는 질문이었다.
뽑는 쪽은 조건을 보고 뽑는다. 내 조건이 뭐였을까.
혼자 사는 여자. 지방에서 올라와 가까운 가족이 없는. 월세가 막 올라서 급한. 그리고 — 나는 이 항목에서 펜을 오래 멈췄다 — 가계부를 쓰는 사람. 칠 년째 하루도 안 거르고. 어긋나면 못 자는 사람. 정해진 양을 정해진 날에 채우는 일을, 시키지 않아도 하는 사람.
채우는 자리에 앉힐 사람을 뽑는다면, 나는 서류로 붙는 지원자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나는 지원한 게 아니라 뽑혔다.
모집 공고 게시: 내 월세 인상 40분 뒤.
전형 방법: 서류(비공개). 면접 없음. 합격 통보 없음.
입사일로부터 두 달 반. 나는 아직 내 직무가 뭔지 다 모른다.
— 21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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