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17화. 규칙 위반 실험
《동거인》 — 연재 17화
시작은 감기몸살이었다.
환절기마다 한 번씩 앓는 몸살이 하필 그 주에 왔다. 열이 삼십팔 도를 넘어서 연차를 냈다. 하루 종일 이불 속에 있었다. 오후 두 시 십일 분에 도어락에서 소리가 났다. 번호도 지문도 아닌, 표면이 눌리는 소리. 로그에 떴다. 외부 인증 시도 — 실패.
나는 이불 속에서 그 로그를 보다가, 열 때문인지 뭔지,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이왕 깨진 거, 데이터를 얻자.
다음 날은 열이 내렸는데 반차를 냈다. 그다음 날도. 인턴 막바지라 눈치가 보였지만 병원 핑계가 통했다. 사흘 연속, 낮 한 시부터 세 시까지 나는 집에 있었다. 사흘 연속 로그에 실패가 찍혔다. 두 시 십일 분, 두 시 사 분, 두 시 십구 분. 집 안의 물건은 사흘 동안 하나도 줄지 않았다. 우유 그대로, 계란 그대로.
시스템이 멈추면 어디서 터지는지 보고 싶었다. 지난번엔 시계였다. 이번엔 어디일까. 나는 집 안 물건들의 수량표를 다시 만들고 기다렸다.
터진 곳은 집이 아니었다.
나흘째 출근했을 때, 나는 회사 내 서랍에서 그걸 봤다. 맨 아래 칸에 견과 소분 봉지를 한 상자 사둔 게 있다. 삼십 봉들이, 출출할 때 하나씩. 지난주에 세어봤을 때 스물두 봉이었다. 그게 열아홉 봉이었다.
세 봉. 사흘, 세 봉.
서랍은 잠겨 있다. 열쇠는 내 파우치에 있다. 회사에서 남의 서랍을 뒤질 사람도 없거니와, 뒤졌다면 세 봉만 가져가지 않는다. 사람은 정량을 모른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한참 동안 서랍을 열어놓고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사무실이 평소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키보드 소리, 복합기 소리. 그 평범한 소리들 속에서 나는 이 일의 규칙이 방금 바뀌었다는 걸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니다. 바뀐 게 아니다. 내가 규칙을 잘못 읽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이게 '집'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집에 사는 무언가, 그 집에서 나가는 몫. 장소의 규칙. 그런데 저건 우리 집에서 사십 분 거리, 시내 사무실 삼 층까지 와서, 잠긴 서랍 안에서, 정확히 하루 한 봉씩 가져갔다.
장소를 따라오는 게 아니다. 소유를 따라온다. 내 것에서 가져간다. 내 몫에서.
그 말은, 그게 이제 나를 '이 집 사람'으로 계산한다는 뜻이다.
저녁에 예람이가 냉장고를 열더니 우유통을 들고 나를 돌아봤다.
"너 요즘 낮에 집에 있지."
사흘 있었어,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실험 얘기를 했다. 예람이는 화를 낼 줄 알았다. 눈에 띄는 짓 하지 말랬잖아, 하고. 그런데 예람이가 한 질문은 그게 아니었다.
"회사에서… 뭐 없어졌어?"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예람이가 어떻게 아는가, 가 대답보다 먼저 왔다. 견과 얘기를 하자 예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도 않았다.
"나는 학교 사물함이었어." 예람이가 우유통을 도로 넣으며 말했다. "옛날에. 시험 기간에 집에 있는 날이 많았을 때. 사물함에 넣어둔 초콜릿이 하루 한 개씩 없어졌어. 자물쇠 달린 사물함인데."
예람이는 그 얘기를 처음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했고, 처음 하는 얘기가 맞았다. 삼 년 치 담담함이었다.
"그때 알았어. 아, 도망을 가도 소용없구나. 이건 집에 붙은 게 아니라—"
예람이가 말을 끊었다. 끝을 아는 문장이었는데 끝을 안 냈다. 나는 끝을 채우지 않았다. 채우면 진짜가 되니까.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진입 실패 3일. 집 안 소실 0.
회사 서랍(잠김): 견과 3봉. 1일 1봉. 정량.
규칙 정정: 장소 기준 아님. 소유 기준.
그건 우리 집을 아는 게 아니라 나를 안다. 내 서랍이 어딘지, 내 몫이 뭔지.
식구 명단에 내가 올라 있다.
— 18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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