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16화. 예람의 밤

조회 1댓글 04시간전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읽어주기

《동거인》 — 연재 16화

영상통화 일 이후로 잠이 안 왔다.

원래 나는 눕고 십 분이면 자는 사람이다. 통장이 어긋났을 때만 빼고. 요즘은 매일 밤이 어긋난 통장이었다. 눈을 감으면 문 너머에서 떨던 진동 소리가 재생됐다.

그날도 두 시가 넘도록 말똥했다. 예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도어락, 신발, 가방 내려놓는 소리. 여기까지는 매일 듣는 순서다. 나는 물이나 마시자 하고 일어나다가, 다음 소리에서 멈췄다.

전자레인지였다.

새벽에 들어와서 예람이는 밥부터 먹는 애가 아니다. 삼 년을 밤에 일한 애는 새벽에 안 먹는다. 살찐다고. 나는 방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고 부엌을 봤다.

예람이는 즉석밥을 데우고 있었다. 그리고 데운 밥을, 서서 먹는 게 아니라, 찬장에서 꺼낸 흰 공기에 옮겨 담았다. 즉석밥은 용기째 먹으라고 있는 물건이다. 굳이 공기에 옮기는 건 먹는 사람이 따로 있을 때다. 예람이는 밥을 소복하게 담고, 수저를 챙겨서 공기 위에 가지런히 얹었다.

그리고 창고방 문 앞으로 갔다.

문 앞 바닥에 공기를 내려놨다. 수저 방향을 한 번 고쳐 놓았다. 문 쪽으로 손잡이가 가게. 그다음에 예람이는 문에서 반 발짝 떨어져서, 벽에 등을 대고, 무릎을 안고 앉았다.

오 분이었다. 나는 시계를 봤으니까 안다. 예람이는 오 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폰도 안 봤다. 그냥 문을 보고 앉아 있었다. 중간에 입술이 몇 번 움직였다. 소리는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문장 끝이 새어 나왔다.

"…언니, 미안해."

오 분이 지나자 예람이는 일어나서 공기를 도로 들었다. 밥은 그대로였다. 젓가락 자국 하나 없이. 예람이는 부엌으로 가서 밥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긁어 넣고, 공기와 수저를 씻고, 엎어놓고, 씻으러 들어갔다.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방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열어봤다. 밥이 있었다. 그다음 날도 있었다. 나는 그 주 내내 새벽에 깨어 있었다. 예람이는 매일 했다. 데우고, 옮겨 담고, 놓고, 앉고, 오 분, 버리고, 씻고. 하루도 안 거르고. 알바가 쉬는 날은 그 시간에 맞춰 부엌에 나왔다.

의례라는 단어 말고는 부를 말이 없었다.

나는 로그를 확인해봤다. 예람이가 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에 도어락은 조용하다. 당연하다. 그건 문 밖의 일이 아니라 문 앞의 일이니까. 낮의 몫은 로그에 찍힌다. 이건 아무 데도 안 찍힌다. 내가 두 달 동안 만든 표 어디에도 이 밥은 없었다. 즉석밥 재고가 좀 빨리 준다고만 생각했지.

그러니까 이 집의 살림은 내가 계산한 것보다 컸다.

낮에 나가는 몫 하나. 성인 한 사람의 하루치. 그리고 밤에, 문 앞에 오 분 놓였다가 버려지는 밥 한 공기 하나.

몫이 두 개다.

낮의 몫은 시스템이다. 로그가 찍히고, 정량이 있고, 밀리면 회수된다. 밤의 밥은 시스템이 아니다. 아무도 안 가져간다. 젓가락 자국도 없다. 그런데 예람이는 삼 년을 매일 한다. 받는 사람이 없는 몫을 계속 차리는 걸 뭐라고 부르나.

제사라고 부른다.

나는 그 단어까지 가서 멈췄다. 그 단어는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아직은. 그런데 한번 떠오른 단어는 지워지지 않았다. 수신인 없는 밥. 문 쪽으로 돌려놓은 수저. 미안해, 로 끝나는 오 분.

예람이는 언니한테 매일 밤 사과하고 있다. 삼 년째. 뭐가 미안한지 나는 모른다. 월세가 밀린 사람의 미안함이 아니다. 밥을 차리는 미안함이다. 그건 종류가 다르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밤의 몫: 밥 한 공기. 문 앞 5분. 회수 없음. 폐기.
수신인: "언니".
이 집의 살림 규모: 몫 둘 + 채우는 사람 둘.

낮의 몫을 받는 게 누구냐고 물어왔는데, 질문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이 문 안에, 지금, 몇 명이 있나.

— 17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연재#룸메이트#오피스텔#도어락
실화풍 목록으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