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14화. 하루치
《동거인》 — 연재 14화
토요일 하루를 통째로 썼다.
나한테는 두 달치 데이터가 있었다. 매일 아침 적어온 품목별 감소량. 우유는 첫 주부터, 나머지는 대조 실험을 시작한 뒤부터. 거기에 창고방에서 센 우유팩 마흔일곱 개. 언니 얘기가 나온 뒤로 나는 이 숫자들을 다시 봐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세입자 통화가 등을 밀었다. 둘이 벌어서 셋이 사는 살림. 살림이면, 규모가 나온다.
나는 노트북에 표를 만들었다. 품목, 하루 감소량, 환산.
우유 300ml. 계란 2알. 쌀, 밥으로 지으면 한 공기 반. 화장지 하루 열두 칸 안팎. 세제와 샴푸는 주 단위로 환산해서 하루치를 냈다. 치약도 줄고 있었다. 이건 최근에야 확인했다. 아침에 눌린 자국이 하나 더 있는 날들.
숫자를 다 놓고 마지막 열에 뭘 적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냥 검색을 시작했다. 성인 1인 하루 권장 섭취량. 1인 가구 월평균 생필품 소비량. 통계청 자료까지 내려갔다.
합계를 내고 나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우유 삼백에 계란 두 알에 밥 한 공기 반. 칼로리로 치면 성인 하루치의 육십 퍼센트쯤 된다. 많이 안 먹는 사람의 하루. 소식하는 사람의 하루. 화장지 열두 칸은 성인 하루 사용량 딱 그거다. 세제, 샴푸, 치약, 전부 1인 소비량 통계의 하한선 언저리에 정확히 앉아 있었다.
이건 도둑질의 양이 아니다. 도둑은 통계에 안 맞는다. 많이 가져가거나, 들쭉날쭉하거나.
이건 식단이다.
누가 한 사람 분량의 식단을 짜서, 매일 그만큼만, 두 달 동안 하루도 안 거르고 가져갔다. 아니다. 가져갔다는 동사가 틀렸다. 표를 다 만들고 나니 문장이 바뀌었다.
누가 한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 집에서, 매일. 우유를 마시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쓰고 이를 닦는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생활비가 우리 냉장고에서 나간다. 훔쳐 먹는 게 아니라 부양이다. 몫이라는 말을 예람이가 왜 썼는지 이제 알겠다. 몫은 원래 식구한테 쓰는 말이다. 네 몫 남겨놨어. 그 몫.
그리고 수칙 1번. 하루 몫은 하루에 채운다. 우유 300 기준.
기준. 나는 그 단어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삼백이라는 기준을 정한 사람이 있다. 이백도 사백도 아니고 삼백. 그건 통계에서 나온 숫자가 아니다. 그 사람이 우유를 하루에 삼백 마신다는 걸 아는 사람이 정한 숫자다. 밥은 한 공기 반이면 된다는 걸 아는 사람. 소식한다는 걸 아는 사람.
한 사람의 식성을 그렇게까지 아는 건 가족이다.
저녁에 예람이가 표를 봤다. 나는 숨기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서로한테 뭘 숨기기엔 너무 멀리 왔다. 예람이는 표를 위에서 아래까지 천천히 읽었다. 환산 열에서 오래 멈췄다. 그리고 예람이가 한 말은 내 예상에 없던 거였다.
"소식하네."
응?
"아니… 양이." 예람이가 자기 입을 한 번 막았다가 내렸다. "생각보다 조금 먹는다고. 어른인데."
예람이는 그 말을 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는 얼굴이 됐다. 어른인데. 우리 둘 다 그 말을 주워 담지 않았다. 화면 속 표가 갑자기 식단표로 보였다. 병원에서 주는 것 같은. 잘 안 먹는 식구를 위해 누가 애써 짠 것 같은.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일일 몫 합계 = 성인 1인 하루 소비량(소식 기준).
몫 ≠ 절도. 몫 = 부양.
300이라는 기준을 정한 사람은 그 사람의 식성을 아는 사람.
한 사람을 먹여 살리는 건, 가족이 하는 일이다.
— 15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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