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11화. 언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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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11화

예람이는 알바를 뺐다. 몇 달을 개근하던 애가 당일에 대타를 구했다. 그만큼의 얘기라는 뜻이었다.

저녁 여덟 시, 식탁. 예람이는 물을 한 컵 받아놓고 마시지는 않았다. 첫마디를 고르는 데 오래 걸렸고, 골라서 나온 첫마디가 이거였다.

"그 손, 나 아는 손이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여기서 물으면 예람이가 도로 닫힌다는 걸 이제 안다. 예람이는 물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처음부터 얘기했다.

언니는 대학 동아리 선배였다. 예람이가 일학년 때 자취방 보증금을 사기당해서 갈 데가 없어졌을 때, 언니가 자기 집 방 하나를 내줬다. 그게 이 집이었다. 시세 반값. 조건은 그때도 있었다. 우유를 채울 것. 낮에는 비울 것. 큰방은 열지 말 것.

"언니랑 여기서 이 년 살았어."

나는 그 문장을 한 박자 늦게 이해했다. 예람이는 이 집에 언니랑 같이 살았다. 언니는 문자 속의 사람이기 전에, 예람이랑 같은 냉장고를 쓰던 사람이었다.

"그때도… 있었어?"

"있었어." 예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 오고, 우유 삼백 줄고. 언니가 다 챙겼어. 나는 처음엔 몰랐어. 언니가 워낙 아무렇지 않게 하니까. 우유는 원래 하루 삼백씩 시드는 건 줄 알았다니까."

예람이가 웃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손은, 이 년 차에 봤어. 여름에. 언니가 현관에서 뭘 닦고 있었는데, 문 밑으로." 예람이는 물컵을 내려다봤다. "언니는 놀라지도 않았어. 나만 봤어. 언니가 그때 그랬어. 놀라지 마. 아는 손이야."

아는 손이야. 예람이가 오늘 나한테 한 첫마디는 언니가 그때 예람이한테 한 말이었다. 물려받은 문장. 수칙처럼.

"누구 손인데?"

"안 가르쳐줬어. 물어봤는데, 언니가 처음으로 화냈어. 그 얘기만 하면." 예람이가 어깨를 좁혔다. "그래서 그 뒤로 안 물었어. 물으면 언니가 힘들어하니까."

나는 다음 질문을 골랐다. 제일 궁금한 것부터가 아니라, 예람이가 대답할 수 있는 것부터.

"언니는 언제 나갔어?"

"삼 년 전에." 예람이의 문장이 짧아졌다. "어느 날, 방 빼게 됐다고. 연락은 문자로 하자고. 그 뒤로 못 봤어."

못 봤어, 에서 예람이 시선이 흔들렸다. 거짓말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만 아까까지의 문장들과 결이 달랐다. 아까까지는 기억을 꺼내는 말이었고, 지금 건 외운 말이었다.

"언니 지금 어디 살아?"

"…몰라."

그 몰라는 이상하게, 오늘 들은 말 중에 제일 진짜 같았다. 준비된 답은 빠르고 매끄럽다. 그 몰라는 느리고, 끝이 갈라졌다. 예람이는 정말로 몰랐다. 삼 년을 매달 그 계좌로 월세를 보내면서, 언니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예람이가 마지막으로, 내가 안 물은 걸 말했다.

"너 쓰는 방 있잖아. 작은방."

응.

"거기가 언니 방이었어."

나는 내 방 쪽을 봤다. 문이 반쯤 열려 있고,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

이사 온 날부터 알던 것들이 있다. 벽에 압정 자국이 아홉 개 있다. 창가 쪽 장판이 침대 다리 모양으로 눌려 있는데, 내 침대 위치랑 미묘하게 어긋난 자리다. 누가 살던 흔적이겠거니 했다. 원룸 자취 육 년이면 남의 흔적 위에 사는 건 익숙하다.

언니는 창고방을 쓰지 않았다. 큰방은 그때도 닫혀 있었다. 언니는 내 방을 썼고, 내 자리에 침대를 놓고 잤고, 벽에 뭔가를 아홉 개 붙여놓고 살았다.

그날 밤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언니도 이 각도로 천장을 봤을 거다. 낮에 몫을 채우고, 밤에 이 방에서 자고, 아침에 우유를 확인하고. 나랑 똑같이.

언니는 지금 어디서 자나.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언니: 이 집에서 2년+α 거주. 내 방 사용. 3년 전 퇴거(경위 불명).
예람: 언니가 어디 사는지 모름. 월세는 3년째 그 계좌로.
벽 압정 자국 9개. 무엇이 붙어 있었나.

— 1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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