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1화. 300밀리리터
《동거인》 — 연재 1화
나는 가계부를 쓴다. 앱 말고 손으로. 열아홉에 상경하면서부터 그랬으니까 벌써 칠 년째다. 돈이 어긋나는 걸 못 견디는 편이다. 통장 잔고랑 영수증이 백 원이라도 안 맞으면 그날 밤은 잠이 잘 안 온다. 사람들은 유난이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게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맞아떨어지는 일이라 그렇다.
먼저 우리 집 사정을 설명해야겠다.
나는 지금 운평시 역세권 오피스텔 투룸에 산다.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원래는 방이 세 개인 구조인데 제일 큰 안방은 창고로 쓴다. 짐 둘 데가 마땅찮아서 둘이 안 쓰기로 했다. 나는 작은방, 예람이는 중간방을 쓴다.
예람이는 대학 동기다. 원래 이 집에 먼저 살고 있었고, 내가 상경 이 년 만에 월세가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방 하나 같이 쓸 사람 구한다는 걸 보고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이 집은 예람이가 어떤 언니한테 재임대로 받은 거다. 전대차라고 한다. 원래 계약자가 따로 있고, 예람이가 그 사람한테 빌려서, 나한테 다시 방 하나를 내준 구조다. 보증금은 그 언니 계좌로 넣었다. 나는 그 언니를 만난 적이 없다. 요즘 이런 비대면 계약이 흔하니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월세가 시세의 반값이었고, 반값이면 웬만한 건 넘어가게 된다.
예람이랑 나는 얼굴 볼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아침 여덟 시에 나가서 저녁 일곱 시쯤 들어오는 인턴이고, 예람이는 오후 늦게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카페 마감 알바다. 둘이 겹치는 시간은 내가 퇴근하고 예람이가 출근하기 전, 저녁 한두 시간 정도다. 나머지 시간엔 집에 한 명씩만 있거나, 낮처럼 아무도 없거나.
우유 얘기를 하려던 거였다.
지난주 화요일에 마트에서 우유를 샀다. 1리터짜리, 이천구백 원. 나는 아침에 시리얼에 부어 먹는 것 말고는 우유를 잘 안 마신다. 한 번에 이백 밀리 정도 쓴다. 그러니까 새로 산 우유는 닷새는 가야 정상이다.
목요일 아침에 시리얼을 부으려고 우유를 꺼냈는데, 가벼웠다.
나는 손으로 무게를 재보는 버릇이 있다. 남은 양을 대충 안다. 화요일에 이백, 수요일에 이백을 썼으면 육백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통이 그것보다 가벼웠다. 뚜껑을 열고 기울여 봤다. 삼백쯤 남아 있었다. 하루 사이에 삼백이 비었다.
예람이가 마셨나 했다. 그럴 수 있다. 같이 사는데 우유 좀 마실 수 있지. 그날 저녁에 물어봤다. 너 우유 마셨어? 예람이는 시리얼도 안 먹는 애다. 안 마셨는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가 마신 거 아냐? 피곤하면 기억 안 나잖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요즘 정신이 없으니까. 넘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우유에 매직으로 표시를 했다. 유난이라는 거 안다. 그런데 아까 말했듯이 나는 어긋나는 걸 못 견딘다. 통 옆면에, 잠들기 전 남은 높이에 선을 하나 긋고 잤다. 아침에 확인했다.
선 아래로 딱 그만큼 내려가 있었다. 눈대중으로 삼백. 다음 날도 그었다. 또 삼백. 그다음 날도. 매일 밤 나는 우유를 안 마셨고, 예람이도 안 마셨고, 아침이면 정확히 삼백씩 줄어 있었다.
이백오십도 아니고 삼백오십도 아니었다. 매일 삼백. 그게 제일 이상했다. 사람이 몰래 마신다면 양이 그렇게 일정할 리가 없다. 어떤 날은 목이 마르고 어떤 날은 덜하다. 기계처럼 매일 똑같이 삼백을 덜어가는 건, 마시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거다. 정해진 몫을 떠가듯이.
여기까지 오니 다른 것도 세게 됐다.
쌀. 이 킬로짜리 봉지를 뜯은 지 삼 주가 넘었는데 예람이랑 나 둘이 먹은 것치고 너무 빨리 줄었다. 계란. 한 판 사면 열흘은 가야 하는데 엿새 만에 비었다. 화장지. 세제. 다 조금씩, 그런데 꾸준히, 우리 둘의 소비로는 설명이 안 되는 속도로 줄고 있었다.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도둑이 들었다면 통째로 없어졌겠지. 이건 쓰인 만큼 줄어드는 거였다. 누군가 이 집에서 매일 밥을 짓고, 우유를 따르고, 화장실을 쓰는 만큼.
나는 도어락을 떠올렸다.
우리 집 도어락은 앱이랑 연동돼 있다. 예람이가 재임대 받을 때 그 언니가 설정해줬다고 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누구 지문인지, 몇 시 몇 분인지 기록이 남는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그 로그를 끝까지 내려봤다.
내 지문, 예람이 지문. 오전에 내가 나간 기록, 저녁에 내가 들어온 기록, 밤에 예람이가 나간 기록, 새벽에 들어온 기록. 규칙적이었다. 우리 둘의 하루가 시간표처럼 찍혀 있었다.
그 사이에, 매일 하나씩 더 있었다.
지문 이름이 등록돼 있지 않은 열림. '게스트'도 아니고 그냥 빈칸이었다. 시간은 매번 낮이었다. 오후 한 시에서 세 시 사이. 내가 회사에 있고 예람이는 아직 자고 있거나 나간, 이 집에 아무도 없어야 하는 시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 빈칸의 열림이 낮에 한 번씩 찍혀 있었다. 우유가 삼백씩 줄기 시작한 그 화요일부터. 정확히 그날부터.
나는 로그를 캡처했다. 손이 좀 차가워져서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그냥 사실만 정리하려고 애썼다. 하나, 누군가 낮에 이 집에 들어온다. 둘, 그 사람은 매일 일정한 양의 생필품을 쓴다. 셋, 도어락에 지문이 등록돼 있다는 건 이 집 주인이 등록해줬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건 침입이 아니다. 허락받은 출입이다.
허락한 사람이 누구냐가 문제였다.
예람이가 새벽에 들어왔다. 나는 자는 척하려다 그만뒀다. 거실로 나가서 폰을 내밀었다. 이거 봐, 낮마다 누가 들어와. 우유도 이 사람이 마시는 거 같아. 지문이 등록돼 있어. 누구야?
예람이는 폰을 오래 보지 않았다. 화면을 슥 한 번 보고, 신발을 벗고,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길게 들렸다. 예람이가 우유를 꺼내 남은 양을 확인하는 게 등 뒤로 보였다.
"…이거, 그냥 채워두면 돼." 예람이가 우유를 도로 넣으며 말했다. "별거 아냐. 줄면 채워두면 돼."
뭘 채워? 내가 물었다. 누가 마시는데?
예람이는 대답 대신 나를 한 번 봤다. 다정한 애다. 평소 같으면 뭐든 길게 설명해줬을 애다. 그런데 그때는 문장이 짧았다.
"자. 내일 출근하잖아."
예람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에 남아서 우유를 다시 꺼냈다. 삼백이 비어 있었다. 마트 가서 새로 사 오기도 뭐해서, 나는 정수기 물을 조금 부어 선을 맞췄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채워두면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손을 움직였다.
물을 붓고 통을 도로 넣으면서, 나는 안방 쪽을 봤다. 우리가 창고로 쓰기로 한 그 큰 방. 문은 늘 닫혀 있다. 짐을 넣어둔 뒤로 한 번도 활짝 연 적이 없다. 그 방문 밑으로, 불이 꺼진 방 특유의 캄캄함이 아니라, 뭔가 옅은 빛 같은 게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을 거다. 낮에 커튼을 안 쳐서 바깥 불빛이 들어온 거겠지.
나는 그 방문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날은.
다음 날 아침, 우유를 확인했다. 내가 물로 채워둔 선, 그대로였다. 하나도 줄지 않았다.
채워두면 조용하다는 걸, 나는 그렇게 알게 됐다.
— 2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