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2화. 대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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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2화

나는 그날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이라는 말이 거창하면, 그냥 셈을 맞춰본 거다.

가계부 옆에 종이를 한 장 더 붙였다. 날짜, 채웠는지 여부, 다음 날 아침 상태. 세 칸이면 충분했다. 대조군이 필요했다. 회사에서 배운 건 별로 없지만 그건 배웠다. 뭐가 원인인지 알려면 하나만 바꾸고 나머지는 똑같이 둬야 한다.

첫날은 채웠다. 우유 선까지 물을 부어두고 잤다. 아침에 그대로였다. 줄지 않았다.

둘째 날은 일부러 안 채웠다. 우유는 어차피 물 탄 거라 아깝지도 않았다. 선 아래로 삼백을 비운 채 그냥 뒀다. 대신 다른 걸 다 세어놓고 잤다. 쌀 몇 컵, 계란 몇 알, 화장지 몇 칸까지.

아침에 우유는 그대로였다. 안 줄었다. 채울 게 없으니 안 가져간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계란이 두 알 없었다. 어젯밤에 열 알이었는데 여덟 알이었다. 쌀도 한 컵 줄었다. 우유에서 못 가져간 삼백만큼, 딱 그만큼을 다른 데서 채워 간 것 같았다. 총량은 늘 맞았다. 하루치 몫은 정해져 있고, 어디서 가져가느냐만 달랐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무서운 건 설명이 안 될 때다. 이건 규칙이 있었다. 규칙이 있는 건 무섭기보다 이상한 거다. 하나, 하루에 정해진 몫이 있다. 둘, 우유를 채워두면 우유로 가져간다. 셋, 안 채우면 다른 걸로 벌충한다. 넷, 그 출입은 늘 낮 한 시에서 세 시 사이다.

넷째 규칙이 제일 걸렸다. 나는 그 시간에 회사에 있다. 예람이는 자거나 나가 있다. 아무도 그걸 본 적이 없다. 도어락 로그에 찍힌 빈칸 하나 말고는.

그래서 반차를 냈다.

인턴이 반차 내는 게 눈치 보이는 일이라, 나는 치과 예약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어금니가 좀 시리기도 했으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목요일 오전 근무만 하고, 열두 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조용했다. 예람이는 그 시간에 자고 있어야 했는데, 방문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나 오늘 낮 근무 대타. 저녁에 봐.' 예람이도 집에 없었다. 그러니까 한 시에서 세 시 사이, 이 집에는 나 혼자였다. 처음으로, 그 시간에 내가 있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현관을 봤다. 도어락은 안쪽에서 보면 그냥 흰 플라스틱 덩어리다. 열릴 때 '삐리릭' 소리가 나고 초록불이 들어온다. 나는 그 소리를 기다렸다. 폰으로 도어락 앱을 열어두고, 로그 화면을 켜둔 채로.

한 시가 지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한 시 반. 나는 좀 우스워졌다. 반차까지 내고 소파에 앉아서 남의 집도 아닌 우리 집 현관을 노려보고 있는 게. 계란 두 알 때문에. 그러다 두 시가 됐다.

두 시 정각에, 현관에서 소리가 났다.

삐리릭이 아니었다. 도어락 바깥면을 누군가 만지는 소리였다. 번호를 누르는 것도 아니고, 지문을 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바닥으로 표면을 쓸어보는 것 같은. 플라스틱이 살짝 눌리는 소리. 그리고 멈췄다.

나는 숨을 죽였다. 폰 화면을 봤다. 로그에 새 줄이 뜨는 걸 봤다.

오후 2시 00분. 그런데 이번엔 빈칸이 아니었다. 상태가 적혀 있었다. '외부 인증 시도 — 실패.'

밖에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못 열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매일 아무렇지 않게 열리던 그 열림이, 오늘은 실패로 남았다. 다른 게 있다면 딱 하나. 오늘은 집 안에 내가 있었다.

집에 사람이 있으면, 그건 못 들어온다.

문 바깥에서 한동안 아무 소리도 안 났다.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렌즈로 밖을 볼 생각도 안 했다. 그냥 소파에 앉아서, 두 시 정각에 멈춘 그 손이 문 저쪽에 아직 붙어 있는지 아닌지를, 소리로만 가늠했다. 이 분쯤 지나서 계단 쪽에서 아주 옅게, 뭔가 끌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그날 저녁 예람이가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걸음이 잠깐 멎었다.

"너 오늘… 집에 있었어?"

낮에. 예람이가 덧붙였다. 나 대타라 없었는데, 너 낮에 집에 있었냐고.

응, 하고 나는 대답했다. 반차 냈어. 그리고 물었다. 낮에 집에 있으면 안 돼?

예람이는 대답을 고르는 얼굴이었다. 이 애가 이렇게 말을 아끼는 걸 나는 삼 년 알고 지내면서 본 적이 없었다. 예람이는 신발을 벗고, 늘 그렇듯 냉장고를 열었다. 우유 통을 꺼내 흔들어 보고, 도로 넣었다.

"…낮엔, 집 비워두는 게 나아." 예람이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네가 있으면, 못 들어오잖아. 그럼 못 가져가고. 못 가져가면—"

거기서 예람이가 말을 끊었다. 냉장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길었다.

"밀려. 밀린 만큼, 다음에 한꺼번에 가져가."

무슨 소리냐고 나는 묻지 못했다. 예람이가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를 봤는데, 미안해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화내거나 겁먹은 게 아니라, 미안한 얼굴. 나한테 뭔가 잘못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게 계란이나 우유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날 밤, 나는 자기 전에 다 세어놓았다. 우유 선, 쌀, 계란, 화장지. 물도 부어 채워뒀다. 규칙대로라면 우유에서 삼백만 가져가고 끝나야 했다.

아침에 확인했다.

우유는 육백이 비어 있었다. 하루치가 아니라 이틀치였다. 어제 낮에 못 들어와서 못 가져간 몫까지, 한꺼번에.

가계부 옆 종이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숫자 대신 문장을 적었다.

밀린 건, 반드시 채워진다.

—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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