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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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작년 11월에 죽었다. 자다가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서른아홉이었고, 지병은 없었다.

유품 정리는 내 몫이었다. 형은 원룸에 혼자 살았고, 물건이 적은 사람이었다. 하루면 끝날 줄 알았던 정리가 길어진 건 책상 위 달력 때문이었다.

은행에서 주는 흔한 탁상달력이었다. 1월부터 11월까지, 아홉 개의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생일도 기념일도 아니었다. 요일도 제각각이었다. 간격도 불규칙했다. 3월엔 두 개, 7월엔 하나도 없었다.

동그라미 밑에 형은 숫자를 하나씩 적어놨다. 4, 4, 3, 4, 2, 3, 2, 1, 1.

처음엔 대출 상환일인가 했다. 은행 기록엔 없었다. 병원 예약인가 했다. 진료 기록도 없었다. 나는 형의 휴대폰을 열어(비밀번호는 엄마 기일이었다) 그 날짜들의 사진첩, 문자, 통화 기록을 다 뒤졌다. 아무것도 겹치지 않았다.

단서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형이 살던 원룸 건물의 관리인 아저씨였다. 보증금 정산 때문에 만났는데, 아저씨가 지나가듯 이런 말을 했다.

"그 방이 좀 그래요. 전기가 자주 나가. 그 라인만."

관리실에 정전 민원 대장이 있었다. 손으로 쓰는 낡은 공책이었다. 나는 형의 달력을 꺼내 대조했다. 아홉 개의 동그라미 중 아홉 개 전부가, 그 건물 3층 라인에 정전이 있었던 날이었다.

그럼 밑에 적힌 숫자는 뭘까. 4, 4, 3, 4, 2, 3, 2, 1, 1.

대장에는 정전 시간도 적혀 있었다. 복구까지 걸린 시간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4분짜리 정전도 있었고 한 시간짜리도 있었다. 숫자와 맞지 않았다.

두 달을 들고 있었다. 답을 준 건 형의 휴대폰이었다. 요금 문제로 해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진첩을 백업하는데, 삭제된 항목 폴더에 영상이 하나 남아 있었다. 10월 30일. 아홉 번째 동그라미, 숫자 1이 적힌 날이었다.

영상은 23초였다. 캄캄한 방. 정전 중인 것 같았다. 형의 숨소리. 카메라는 방문 쪽을 찍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문 앞이 아주 희미하게 밝아지는데, 복도 비상등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문틈 불빛이, 아래에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끊겼다 이어졌다 했다.

문 앞을 뭔가가 가리고 서 있다가, 옆으로 비켜서면 다시 밝아지는 식으로.

나는 그 영상을 세 번 봤다. 세 번째에야 형이 뭘 세고 있었는지 알았다. 문틈의 그림자는 폭이 제각각이었다. 사람 발목 폭의 그림자가, 첫 번째. 잠시 뒤 두 번째. 영상이 끝날 때까지 문 앞을 지나가 선 그림자는 하나였다. 지나간 게 아니라, 문 앞에 와서 선 것이 하나.

숫자는 그거였다. 정전 때마다 형의 방 문 앞에 와서 서 있던 것의 수.

4, 4, 3, 4, 2, 3, 2, 1, 1.

숫자는 줄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한동안 생각했다. 하나씩 어디로 갔을까. 왜 마지막 두 번은 1이었을까.

형이 죽은 11월 9일 밤, 그 건물 3층에 열 번째 정전이 있었다는 걸 대장에서 확인했다. 형은 그날 동그라미를 치지 못했다.

만약 쳤다면 밑에 적혔을 숫자를, 나는 짐작만 한다. 아홉 번에 걸쳐 하나씩 줄어든 것들이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형의 방은 아직 비어 있다. 관리인 아저씨 말로는, 그 라인 정전은 형이 죽은 뒤로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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