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결제

조회 5댓글 01시간전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반년쯤 지나 카드 명세서를 정리하다가 알았다. 매달 구천오백 원. 영화 스트리밍 구독료가 계속 나가고 있었다.

해지하는 게 뭐 어렵겠나 싶었다. 아버지 이메일은 알고 있었고, 비밀번호는 늘 쓰시던 그거였다. 로그인이 됐다.

해지 버튼을 찾다가, 시청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시청: 어제.

돌아가신 분 계정이니 반년 전에 멈춰 있어야 했다. 기록을 내려봤다. 반년 동안 끊긴 날이 없었다. 매일 밤 한 편씩, 꼬박꼬박. 오래된 흑백 영화들이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누가 계정을 도용했구나,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프로필이 이상했다. 이 계정에는 프로필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 이름. 다른 하나는 반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름이 내 이름이었다. 나는 이 계정에 프로필을 만든 적이 없다.

시청 기록이 쌓이고 있는 쪽은, 내 이름의 프로필이었다.

기록을 한 편씩 훑어 내려가다가 손이 멈췄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영화들 사이에, 최근 것들이 섞여 있었다. 지난달 내가 극장에서 혼자 본 영화. 지지난 주에 내가 집에서 본 드라마. 회차까지 같았다.

내가 본 것을, 그날 밤마다, 이 프로필이 따라 보고 있었다.

해지 버튼을 눌렀다. 확인 창이 떴다.

"정말 해지하시겠어요? 함께 보던 기록이 모두 사라집니다."

'함께'라는 단어를 나는 오래 봤다. 그리고 창을 닫았다.

구독은 아직 유지 중이다. 구천오백 원.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는 값이라면, 치르는 편이 싸다.

어젯밤 시청 기록에는 내가 아직 안 본 영화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개봉 예정작이었다.

다음 주에, 보러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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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유품정리#디지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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