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20화. 갚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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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주소》 — 연재 20화

아홉 번째 손님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싸우면서 탔다.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끝자리 사백 원. 삼십 대 후반 남자였고, 태울 때부터 왼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있었다. 취해서 토할 것 같은 사람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차가 출발하고 오 분쯤 지났을 때, 손님이 입을 막은 채로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백미러를 보니 손님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자는 게 아니라 참는 얼굴이었다.

"저, 어디…" 손님이 손바닥 사이로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저한테.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목적지로만 가주세요. 부탁입니다."

알겠다고 했다. 이런 부탁은 처음이었지만, 이 부탁이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손님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알고 있는 거다.

시 경계 언저리에서 왔다. 손님의 손이 자기 입에서 떨어졌다. 저항이 끝나는 게 보였다. 팔이 스르르 내려가고, 고개가 들리고, 그 또렷한 발음이 나왔다.

"적동로 19-4로 가주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등록 목적지로 계속 갔다. 내비의 파란 선이 떴다가, 두 번 말하고 꺼졌다. 손님은 다시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깰 때마다 자기 입을 막았다. 참고, 뚫리고, 참고. 그 반복을 백미러로 보는 게 이 일을 시작하고 본 것 중에 제일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목적지 골목 앞에서 손님을 깨웠다. 손님은 일어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자기 왼손을 봤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말했죠."

"뭘요?"

"주소요." 손님은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말했잖아요. 얼굴 보니 알겠네."

나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이 손님은 깨어 있는 채로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첫 손님이었다.

"아세요? 그 주소."

"알죠." 손님은 피곤하게 웃었다. "우리 집안 대대로 아는 주소예요. 가면 안 되는 주소. 할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겼어요. 술 마시면 대리 부르지 말고 자고 와라. 차에서 그 주소를 부르게 된다. 저는 그게 할아버지 노망인 줄 알았어요. 스무 살 때까지는."

손님은 창밖의 자기 집 골목을 봤다. 들어가면 되는데 안 들어가고, 말을 이었다. 이 시간의 취객들은 기사한테 말한다. 이 손님은 취기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래 혼자 알던 걸 알아듣는 사람을 처음 만난 이유.

"우리 할아버지가 그 마을 뱃일 돕던 집이에요. 그 밤에 둑에서 밧줄을 잡았대요. 배 들어갈 때 풀고, 나올 때 당기고. 그 얘길 딱 한 번 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그러면서 그러셨어요. 우리는 반쯤 갚았다. 밧줄 잡은 만큼은 갚았어. 그래도 모자라. 그 밤에 그 동네 사람들은 전부 빚을 졌어. 안 진 집이 없어."

"무슨 빚이요?"

"그 집에 진 빚이죠." 손님은 목소리를 낮췄다. "배가 다섯을 건졌잖아요. 여섯째 자리를 그 집 할머니가 안 탔고. 그 다섯이 그냥 다섯이에요? 그 동네 마지막 밤에 물에 있던 사람이 그 다섯인데. 마을 사람 전부의 마지막이 그 배에 탔던 거예요. 할머니가 자리를 내준 건 다섯 사람한테가 아니라 마을 전부한테예요. 그러니까 전부 빚졌지."

손님은 문손잡이를 잡았다. 잡고, 안 열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저희 집은 그래도 밧줄 값을 쳐서 반쯤 갚은 집이에요. 그래서 저는 부르기만 하고 안 가요. 부르다 말아요, 매번. 근데 못 갚은 집들은…" 손님이 백미러 속에서 나를 봤다. "끝까지 가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손님은 진짜 마지막으로, 문을 열면서 물었다.

"기사님네는 갚았어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손님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취한 사람의 질문은 반쯤은 혼잣말이니까. 문이 닫히고, 손님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왼쪽 소매가 젖어 있었다. 반쯤 갚은 집의 소매도 젖긴 젖는 모양이었다. 다만 팔꿈치까지가 아니라 손목까지만.

젖는 데도 등급이 있었다.

집에 와서 나는 노트의 집안들 페이지를 갱신했다. 빚이라는 열을 추가했다. 밧줄 집: 반 갚음, 손목까지. 김 부장네: 불명, 팔꿈치까지. 우리 집: 불명.

우리 집 줄의 빚 칸을 채우려면 계산이 필요했다. 그 밤에 우리 집은 뭘 받았나. 배 한 척, 다섯 자리,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누나의 목숨. 그리고 뭘 냈나.

외증조모.

받은 것과 낸 것을 저울에 올리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나는 감히 계산하지 못했다. 사람으로 내고 사람으로 받은 장부는 사람이 셈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그 손님 말대로라면 이 콜은 빚 독촉이고, 못 갚은 집 순서로 돈다.

그리고 콜은 지금, 우리 집에 제일 자주 온다.

— 2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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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대리운전#심야#도시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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