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40화(최종). 반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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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40화 · 최종화

예람이가 나가고 한 달이 지났다.

몫은 다시 하루치다. 우유 삼백, 계란 두 알, 쌀 한 컵. 예람이 몫의 정산분이 어떻게 계산되고 있는 건지 나는 모른다. 두 배를 각오했는데 하루치만 나간다. 감면인지, 유예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장부 어딘가에 적히고 있는 건지. 한번은 물어볼까 하고 문자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어떤 셈은 확인하는 순간 청구가 시작된다. 칠 년 가계부 인생의 감이다.

생활은 이렇다. 아침에 채우고, 낮에 비우고, 저녁에 확인하고, 새벽에 밥을 차린다. 밥은 이제 쳐준다. 차린 다음 날 낮 몫이 정확히 삼백인 걸로 안다. 예람이 밥은 삼 년 걸려서 쳐졌는데 내 밥은 한 달 만에 쳐졌다. 빚의 방향이 달라서일 거다. 예람이는 미안한 사람이었고, 나는 부탁을 들어준 사이니까. 이 집 장부는 감정도 계정과목으로 잡는다. 미안함, 고마움, 전부 자산 아니면 부채다.

정규직은 다른 회사로 됐다. 집에서 버스 두 정거장. 면접 때 집이 가까워서 야근도 괜찮냐고 묻길래 낮에 외근만 없으면 다 됩니다, 라고 했다. 면접관들이 웃었다. 나는 안 웃었다. 연봉은 짜지만 반값 월세라 셈이 맞는다. 반값에는 이유가 있고, 나는 그 이유로 산다.

예람이는 매주 문자한다. 새 동네 사진, 카페 그만두고 시작한 낮 일 얘기. 오지는 않는다. 그러기로 했다. 문주연은 한 달에 한 번 온다. 올 때마다 우유를 사 온다. 자기 몫 말고 한 팩 더. 그 한 팩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매번 같은 말을 한다. 언니가 사 오는 거야, 라고.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묻지 않는다.

지난주에 나는 언니의 가계부 세 권을 창고방 문 앞에 돌려놓았다. 원래 주인 것이니까. 다음 날 아침에 가계부는 없어졌고, 대신 문 앞에 접힌 우유팩이 하나, 그 위에 볼펜이 한 자루 놓여 있었다. 언니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볼펜.

이어서 쓰라는 뜻으로 받았다.

그래서 요즘 내 가계부에는 항목이 하나 바뀌었다. 공과금이라고 적던 칸을 지우고 새로 적었다.

식비(3인).

지출이 아니라 식비다. 뜯기는 게 아니라 먹이는 거니까. 삼 인이다. 나, 방 안의 언니, 그리고 큰방의 — 이름을 아직 모르는 우리 집 첫째. 문주연이 언젠가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있게 되면, 그때 항목 옆에 적어 넣을 자리를 비워뒀다.

어제는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었다.

쓰다 만 글이 생각나서였다. 역세권 투룸 셰어, 시세 반값. 저장 안 했다고 썼었는데, 브라우저가 임시저장을 하고 있었다. 기계는 사람보다 성실하다. 제목과 본문 절반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걸 오래 읽었다. 다섯 달 전의 내가 걸려든 문장들. 언니가 예람이한테 쓰지 못한 문장들. 예람이가 나한테 쓰지 못한 문장들. 시스템이 대신 써준 문장들.

방은 지금 하나 비어 있다. 예람이 방. 반값의 반값이면 나갈 방. 그 방을 채우면 나는 편해진다. 월세가 반으로 줄고, 몫을 나눌 손이 생기고, 언젠가 이 글의 마지막 조항대로 넘기고 나갈 수도 있다. 커서가 깜박였다. 본문 절반 뒤에서. 이어 쓰면 되는 자리에서.

나는 전체 선택을 하고, 지웠다.

빈 문서가 됐다. 그리고 빈 문서에 다른 것을 썼다. 뭘 썼는지는 적지 않겠다. 이 기록은 사실만 적는 게 원칙이지만, 마지막 한 가지는 나만 알아도 되는 것으로 남겨둔다. 다만 이거 하나는 적는다. 그건 구인글이 아니었고, 조항이 아니었고, 누구를 부르는 글도 아니었다. 쓰는 데 오 분이 걸렸고, 쓰고 나서 나는 인쇄를 눌렀다.

인쇄된 종이는 오늘 낮에 창고방 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지금은 저녁이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다. 운평의 하늘은 오늘 주황색이다. 나는 마트에 다녀왔고, 냉장고에는 새 우유가 들어 있다. 초록 팩. 유통기한이 긴 걸로.

낮 두 시 십일 분의 로그는 오늘도 찍혔다. 두 번째 방문은 요즘 뜸하다. 대신 가끔, 저녁에 내가 가계부를 쓰고 있으면 문 너머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우리는 각자의 장부를 적는다. 같은 살림을, 양쪽에서.

문 아래로 밀어 넣은 종이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급하지 않다. 이 집에서 나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밀린 건 반드시 채워진다. 그 문장은 반년 전엔 무서운 말이었는데, 요즘은 가끔 위로가 된다. 보낸 것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가계부 옆 종이에는 오늘 이렇게 적었다.

식비(3인): 지출 완료.
우유: 채움.
답장: 대기.

오늘 밤도, 채워두면 조용할 것이다.

— 끝 —

《동거인》 전 40화 완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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