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30화. 밀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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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30화

문주연이 우리 집에 왔다. 처음이었다. 아니, 처음이라는 말이 틀렸다. 문주연은 현관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다 말고 한참 서 있었다. 이십 년 만의 귀가였다.

거실을 둘러보는 문주연의 시선이 창고방 문 앞에서 멈췄다가, 지나갔다. 그쪽으로는 안 가겠다는 게 온몸으로 보였다. 우리는 식탁에 앉았고, 문주연이 가방에서 노트를 한 권 꺼냈다. 두꺼운, 모서리가 다 닳은 대학노트였다.

"부모님 거야. 유품 정리할 때 내가 가져갔어. 버리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고 갖고만 있었어."

아버지의 기록이었다. 언니의 가계부보다 글씨가 굵고 급했다. 날짜, 채운 것, 그리고 드문드문 비고. 이십 년 치 가까이 됐다. 우리는 세 시간 동안 그걸 같이 읽었다. 그날 우리가 알게 된 걸 순서대로 적는다.

몫은 처음부터 우유 삼백이 아니었다. 초기 기록은 밥이었다.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어머니가 차리는 밥상. 우유 삼백이 등장하는 건 몇 년 지나서다. 비고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우유 좋아하니 아침엔 우유로." 이름 자리는 볼펜으로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지운 자국이 여러 군데였다. 아버지는 이름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사람이었다.

수칙의 원형도 이 노트에 있었다. 항목이 아니라 시행착오였다. "낮에 집을 비우니 순하다." "큰방 문을 열었더니 사흘 조용. 그 뒤 몰아서 가져감. 다시는 열지 말 것." "말을 걸지 말 것. 대답을 하게 되면 끝이 없다." 언니의 수칙 일곱 항목은 이 노트 이십 년 치를 정리한 요약본이었다.

그리고 끊긴 적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십오 년쯤 전이었다. 어머니가 크게 수술을 받았고, 아버지가 병원에서 석 달을 살았다. 집이 비었다. 몫이 석 달 밀렸다. 그 석 달 치 페이지는 기록이 없다가, 복귀 후 첫 기록이 이렇다.

"돌아옴. 집 안의 달력이 전부 삼 년 전으로 넘어가 있음. 시계가 아니라 달력. 그리고 큰방 앞에 ○○ 어릴 적 신발이 나와 있음. 우리가 버린 신발. 밀린 것을 갚는 방법을 밤새 의논함."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필체가 흐트러진 한 줄.

"장모님이 들어가시겠다고 함."

문주연이 그 페이지에서 설명을 보탰다. 외할머니는 그즈음부터 이 집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큰방 옆 작은방에서. 그리고 어느 겨울에 돌아가셨는데, 문주연의 기억으로는 임종이 이상했다고 했다. 병원도 장례식장도 아니고, 이 집에서, 큰방 문 앞에 이부자리를 펴달라고 해서 거기서. "밀린 건 어른이 갚는 거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겨울 이후 기록은 평온하다. 달력도 돌아왔다고 적혀 있다.

두 번째 끊김은 노트의 끝에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 채우던 마지막 몇 년. 기록 간격이 벌어지고, 글씨가 약해진다. 마지막 페이지는 기록이 아니라 편지였다. 수신인은 주원이었다.

"주원아. 아버지가 요즘 자꾸 거른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밀린 게 얼마나 쌓였는지 세다가 그만뒀다. 세는 게 무서운 날이 온다. 네가 오겠다는 걸 말리지 못해 미안하다. 집을 판 것은 너희 몫까지 이 집에 묶어두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판다고 팔리는 집이 아니더라. 산 사람은 세만 놓고 얼씬을 않는다. 그 사람도 아는 게다. 이 집은 소유가 아니라 당번이다."

이 집은 소유가 아니라 당번이다.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등기부의 십 년 전 소유권 이전, 얼굴 없는 소유주, 관리비의 보전료. 조사 항목 3번이 그 한 줄로 반쯤 풀렸다. 소유주는 이 집을 산 게 아니라 떠안은 거고, 보전료는 아마 그 사람 나름의 당번 값일 거다.

예람이는 노트를 다 읽고 나서 한참 말이 없다가, 갑자기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재작년 겨울에 나 폐렴으로 입원했었어. 두 달. 그때 언니가 혼자 다 챙겼어. 나 퇴원하고 언니가 그랬어. 밀린 건 없다고, 걱정 말라고." 예람이가 노트의 장모님 페이지를 짚었다. "언니가 사라진 게 그다음 해 봄이야."

밀린 건 어른이 갚는 거다.

두 달 치 두 사람 몫이 어디로 갔는지, 그 겨울에 무엇으로 정산됐는지, 노트의 산수로 계산하면 답이 나온다. 예람이도 지금 그 계산을 한 거다. 언니는 그만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던, 그날 식탁에서 끊겼던 문장이 마저 이어졌다.

언니는 갚은 거다. 자기로.

문주연은 노트를 우리한테 두고 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창고방 쪽을 한 번 보고, 아주 작게 말하고 갔다. 우리한테 한 말이 아니었을 거다.

"주원아. 언니 왔다 간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끊김 2회. 정산 2회. 정산 수단: 사람.
언니의 실종 = 예람의 두 달을 갚은 것.
"이 집은 소유가 아니라 당번이다."

— 3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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