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24화.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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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24화

아침에 우유 두 팩을 사서 들어갔다.

예람이는 현관에서 나를 맞았다. 우리는 어색하게 서서, 포옹도 사과도 없이, 내가 내민 우유를 예람이가 받아 냉장고에 넣는 걸로 귀가 절차를 끝냈다.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 집에서 그 소리는 늘 어떤 문장의 마침표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기로 했다니까, 예람이는 정말 안 했다. 대신 냉장고 앞에 선 채로 보고를 했다. 네가 없던 사흘, 낮 몫이 매일 두 배로 나갔어. 네 몫이 나한테 넘어온 거야. 밥은 매일 차렸고. 통장이 이번 달을 못 버텨.

나는 식탁에 앉아서 노트를 폈다. 새로 산 노트였다. 표지에 아무것도 안 적힌.

"앉아. 우리 회의하자."

예람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그 얼굴에 아주 잠깐,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원래의 예람이 같은 게 스쳤다. 회의? 회사 다니더니 회사 사람 다 됐네. 예람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앉았다. 우리는 화해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테이블에 앉는 데는 성공했다.

첫 안건은 운영이었다. 나는 표를 그렸다. 우유 당번, 장보기 주기, 낮 시간 스케줄 공유, 예산. 몫 비용은 반씩. 월세는 원래대로. 밥 의례는 예람이가 계속 하되, 예람이가 못 하는 날엔 나한테 미리 말할 것. 예람이는 마지막 항목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대신 못 해. 해봤자 안 될 거야."

왜.

"그 밥은… 아무나 차린다고 쳐주는 게 아닌 것 같아. 언니랑 나 사이의 일이라." 예람이가 말을 골랐다. "빚진 사람이 갚아야 빚이 갚아지잖아. 그런 거야."

나는 그걸 노트에 적었다. 밥 의례: 예람 전속. 대체 불가(추정). 적으면서 생각했다. 이 시스템은 물건만 세는 게 아니다. 누가 주는지를 본다.

두 번째 안건이 본론이었다. 나는 노트 새 페이지에 큰 글씨로 적고 예람이 쪽으로 돌렸다.

나가는 방법을 찾는다. 규칙 안에서.

예람이는 그 문장을 한참 봤다.

"그런 게 있으면 언니가 찾았겠지."

"언니는 못 찾은 게 아니라 안 찾았을 수도 있어." 나는 언니의 가계부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잘 먹는다, 다행이다, 라고 쓰는 사람. "언니한테 이건 나가야 할 방이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 우리랑 처지가 달라. 언니한테 저 방은—"

나는 말을 끊었다. 저 방은 뭐라고 말하려던 건지 나도 몰랐다. 다만 언니는 이 일을 운영했지 탈출하려던 흔적이 없다. 수칙 어디에도 나가는 법은 없다. 나가는 법을 적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쓴 문서다.

"조사할 게 세 개야."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하나, 언니. 실명, 가족, 개명 기록. 문주연이라는 이름이 누군지. 둘, 수칙의 원본. 예람이 네가 받은 건 사본이거나 요약일 수 있어. 원본에 더 있을 수 있어. 셋, 건물. 보전료 삼만 사천 원이 어디로 가는지."

"넷." 예람이가 조용히 말했다. "저 방."

나는 예람이를 봤다. 예람이는 창고방 쪽을 안 보고 노트만 보고 있었다.

"언니 폰. 저기 있잖아. 언니에 대해 제일 많이 아는 물건이 저 안에 있어."

그걸 꺼내자는 말을 예람이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울리게 하면 안 된다고 내 폰을 뺏던 애가. 예람이는 내 표정을 읽고 덧붙였다. 지금 말고. 방법을 찾고 나서. 순서가 있어.

나는 노트에 네 번째 항목을 적었다. 그리고 맨 위에 제목을 적었다. 제목이 필요했다. 회의록에는 제목이 있어야 하니까.

탈출 공학.

예람이가 그걸 보더니 처음으로 소리 내서 웃었다. 짧게, 코로 웃는 웃음이었지만 웃음은 웃음이었다. 못 됐다, 너. 공학이 뭐야. 나는 지우개를 들었다가 그냥 뒀다.

그날 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문 닫기 전에 예람이가 말했다.

"온 거, 고마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르고 골라 온 말이라는 게 보여서, 나는 그냥 어, 하고 대답했다. 감정은 최저점이었다. 협력은 시작됐다. 둘은 다른 거고, 다른 채로도 굴러간다는 걸 우리는 그 가을에 배웠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운영 분담 확정. 조사 항목 4.
상태: 친구 아님. 전우.

— 2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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