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냉동실
할머니가 봄에 돌아가셨다. 지금부터 쓰는 건 유품 정리 중에 발견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가족들과도 아직 결론을 못 냈다. 업데이트로 이어 적겠다.
할머니는 혼자 살던 아파트에서 깔끔하게 늙으신 분이었다. 유품 정리도 수월했다. 옷장은 계절별로 정리돼 있었고 서랍마다 라벨이 붙어 있었다. 문제는 냉장고였다. 정확히는 냉동실 맨 아래 칸.
그 칸만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냉동실 서랍에 자물쇠를 다는 사람이 있나. 열쇠는 할머니 손지갑에서 나왔다. 조그만 자물쇠 열쇠가 동전들 사이에.
칸 안에는 지퍼백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서른 개쯤. 하나같이 유성 매직으로 겉면에 연도가 적혀 있었다. 제일 오래된 건 삼십몇 년 전, 제일 최근 건 작년.
내용물은 밥이었다.
한 봉지에 밥 한 공기 분량씩. 꽁꽁 얼어서 서리가 앉은, 연도별 밥 서른 공기.
**업데이트 1**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는 봉지들을 보더니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가 모르던 가족 이야기를 했다.
나한테 삼촌이 한 명 더 있었다. 엄마의 오빠. 서른 몇 해 전 겨울에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싸우고 나간 건지 사고인지 아무도 모른다. 실종 신고를 했고, 찾지 못했고, 할아버지는 몇 년 뒤 호적을 정리하자고 했고, 할머니는 반대했고, 그 일로 두 분 사이가 평생 서먹했다고 한다.
봉지의 제일 오래된 연도가 삼촌이 사라진 해였다.
"제삿밥이야." 엄마가 말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니까 제사를 지낼 수가 없잖아. 그렇다고 밥을 안 해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 얼려놓으신 거야. 매년 그 애 생일마다 한 공기씩."
**업데이트 2**
가족회의를 했다. 봉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버리는 건 아무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삼십 년치 어머니 마음을 음식물 쓰레기로 버릴 수는 없다. 절에 여쭤보자, 산소에 묻자, 의견이 오가다가 큰이모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봉지가 서른한 개였다.
삼촌이 사라진 해부터 작년까지 세면 서른 개여야 했다. 하나가 더 있었다. 연도들을 늘어놓고 대조하니 중복은 없었다. 대신 마지막 봉지의 연도가 문제였다.
올해였다.
할머니는 봄에 돌아가셨다. 삼촌 생일은 시월이다. 할머니는 올해 봉지를 만들 수 없었다.
**업데이트 3**
올해 봉지는 다른 봉지들과 몇 가지가 달랐다. 서리가 안 앉아 있었다. 얼린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매직 글씨체가 미묘하게 달랐다. 할머니 글씨는 숫자 끝을 꾹 누르는 버릇이 있는데, 이건 흘려 썼다.
우리 식구 중에 이 냉동실에 봉지를 넣은 사람은 없다. 다들 맹세했다. 열쇠는 할머니 지갑에 있었고, 지갑은 장례 이후 큰이모 집 금고에 있었다.
경찰에 신고할 일인가. 침입 흔적도 없고, 없어진 것도 없고, 늘어난 게 밥 한 봉지인 사건을.
**업데이트 4 — 마지막**
시월에, 삼촌 생일에, 우리는 할머니 아파트에 모였다. 아직 정리가 안 끝나서 집은 그대로였다. 엄마와 이모들이 서른한 개의 밥을 다 녹여서, 큰 솥에 물을 잡고 죽을 끓였다. 삼십 년치 밥으로 끓인 죽을 나눠 먹는 게 이모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제사이자 장례이자, 늦은 답장으로.
죽을 먹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안에 즉석밥 한 개와 편지지 한 장. 편지에는 두 줄이 적혀 있었다. 흘려 쓴, 숫자 끝을 안 누르는 그 글씨로.
"올해 것은 제가 채웠습니다. 이제 그만 얼리셔도 됩니다."
서명은 없었다. 우리는 그 즉석밥을 죽 솥에 마저 넣었다.
삼촌이 살아 있는 건지, 살아 있다면 왜 못 돌아오는 건지, 그날 이후로도 연락은 없다. 다만 엄마는 그 뒤로 잠을 잘 잔다. 얼어 있는 게 없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냉동실이든 어디든, 삼십 년 얼어 있던 게 녹으면, 산 사람은 일단 잠부터 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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