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쓰는 법
우리 집은 아직 지방을 쓴다. 병풍 앞에 지방틀을 세우고, 한지에 붓펜으로 현고학생부군신위 여덟 자를 써서 붙인다. 제사 마치면 마당에서 태운다. 요즘 세상에 유난이라는 거 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그건 유난이 아니라 규칙이었다.
지방은 아버지만 썼다. 그리고 쓸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한 번에 써야 한다. 획 덧대면 못 쓴다."
삐뚤어져도 그대로 붙이고, 획이 하나라도 어긋나면 그 종이는 접어서 따로 태우고 새 종이에 처음부터 다시 썼다. 고친 종이를 쓰면 안 되냐고 어릴 때 물어본 적 있다. 아버지는 붓펜 뚜껑을 닫으면서 짧게 대답했다.
"지방은 부르는 종이야. 이름을 고쳐 쓰면 부르다 만 게 된다."
부르다 만 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라고는 못 물었다. 아버지 얼굴이 그 이상 묻지 말라는 얼굴이었다. 할머니한테 물었더니 할머니는 더 짧게 말했다. 옛날부터 그래. 산 사람 이름도 함부로 안 고쳐 쓰는데 그쪽 이름은 오죽하겠냐.
재작년 할아버지 제사 때 아버지가 오른손을 다쳤다. 공장에서 지게차 정비하다가 손등이 부러져서 깁스를 했다. 지방을 쓸 사람이 없었다. 큰집은 다 흩어졌고 그 자리에 붓을 잡아본 사람이 나뿐이었다. 서예는 초등학교 방과후가 전부였지만.
나는 연습부터 하겠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시간이 없다고 했다. 자시 넘기면 안 된다고. 한지를 지방틀에 대고, 아버지가 옆에서 한 자 한 자 불러줬다. 현. 고. 학. 생. 떨리는 건 참을 만했다. 문제는 부 자였다. 삐침을 내리긋다가 끝이 갈라졌다. 붓펜 모가 벌어지면서 획 끝이 두 가닥이 된 거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갈라진 틈을 메우려고 획 위에 한 번 더 그었다.
아버지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늦었다. 이미 덧댄 뒤였다. 다시 쓰자, 하고 내가 종이를 갈려는데 아버지가 잠깐 벽시계를 봤다. 자시까지 십 분이 없었다. 새로 쓰면 늦는다. 아버지는 한참 지방을 내려다보다가, 처음 보는 얼굴로 말했다.
"…붙여라. 오늘은 이걸로 모신다."
제사는 평소대로 지나갔다. 잔 올리고, 절하고, 문 열어두고 잠시 물러나 있고. 이상한 건 하나였다. 향이었다. 향 연기가 두 갈래로 올라갔다. 바람도 없는 방에서, 한 향에서 나는 연기가 중간부터 갈라져서 따로 흔들렸다. 사촌동생은 신기하다고 폰을 꺼냈다가 큰어머니한테 등짝을 맞았다.
지방을 태울 때 아버지가 마당에서 오래 서 있었다. 다 탄 재를 뒤적이는 걸 봤다. 뭐 찾으세요, 하니까 아버지는 대답 대신 재를 발로 흩고 들어왔다. 나중에 들었다. 지방 한 장을 태우면 재도 한 장 분량이어야 하는데, 그날은 두 장 분량이었다고. 아버지는 그걸 세어본 거였다. 세어보는 법을 안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도 겪었거나 들었다는 뜻이었다.
그해 겨울부터 우리 집 제사상엔 수저가 한 벌 더 올라간다.
내가 물어보기 전에 할머니가 먼저 놓았다. 누구 거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밥그릇 뚜껑을 덮으면서 말했다.
"부르다 만 이름이 있으면, 듣다 만 이가 있는 법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그 뒤로 두 번의 제사에서, 물린 밥그릇 두 개 중에 이상하게 한쪽만 밥이 눌려 있었다. 숟가락으로 가운데를 누른 것처럼. 우리 식구는 아무도 젯밥에 손을 안 댄다.
아버지 손은 다 나았고, 지방은 다시 아버지가 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두 장을 쓴다는 거다. 한 장은 할아버지 지방. 한 장은 여덟 자 자리에 아무것도 안 쓴 빈 지방.
빈 지방을 왜 붙이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가 한 대답을 나는 오래 생각한다.
"이름을 모르니까 비워두는 거야. 비워두면, 지가 알아서 자기 자린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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