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

조회 1댓글 03시간전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읽어주기

아버지 고향 마을에는 아직 동제가 있다. 정월에 마을 뒷산 당집에서 지내는 제사다. 규모는 쪼그라들어서 이제 참석 인원이 서른 명도 안 되지만, 제사 자체는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육이오 때도 지냈다는 게 노인들 자랑이다.

제관은 제비뽑기로 정한다.

섣달 그믐 전 마을회관에서, 세대주들이 모여 종이를 뽑는다. 종이는 이장이 접는다. 빈 종이 여러 장에 '제(祭)' 자 적힌 종이가 한 장. 제 자를 뽑은 사람이 그해 제관이 되어 보름간 궂은 데 안 가고 몸을 삼가다가 제를 올린다. 여기까지는 어느 시골에나 있는 풍습이다.

우리 마을이 다른 건 종이 수다.

참석자가 몇 명이든, 종이는 항상 한 장이 더 들어간다. 스물아홉 명이 모이면 종이는 서른 장. 그리고 뽑기가 끝나면 소쿠리에 종이가 한 장 남는다. 남아야 한다. 이장은 그 남은 종이를 펴보지 않고 당집 아궁이에서 태운다. 그것까지가 뽑기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가서 본 적이 있다. 나는 애라서 뽑기에는 못 끼고 뒷줄에서 구경했다. 뽑기가 끝나고 소쿠리에 남은 마지막 종이를 이장 할아버지가 집게로 — 손으로가 아니라 집게로 — 집어서 태우러 나가는 걸 보고 아버지한테 물었다. 저 종이는 뭐예요.

아버지는 내 입을 손으로 막다시피 하고 회관을 나와서야 대답했다.

"저건 몫이 있는 종이야. 사람 몫이 아니고."

빈 종이인지 제 자인지 뭐가 적혔는지는 아버지도 몰랐다. 편 사람이 없으니까. 다만 전해오는 규칙은 분명했다. 종이는 반드시 사람 수보다 한 장 많게. 마지막 한 장은 펴보지 말고 태울 것. 그리고 혹시라도 뽑기 도중 소쿠리가 먼저 비면 — 사람 수와 종이 수가 맞아떨어져 버리면 — 그해 제사는 두 번 지낸다.

소쿠리가 빈 적이 있냐고 물으니 아버지는 딱 한 번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젊을 때. 계산이 틀렸는지, 누가 두 장을 집었는지, 마지막 사람이 뽑고 나니 소쿠리가 비어 있었다. 회관이 조용해졌고, 그해 마을은 정월에 한 번, 칠월에 한 번 제를 지냈다.

"칠월 제사는 왜 지내는 건데요?"

"몫을 못 받은 쪽이 자기 몫을 받으러 오기 전에, 먼저 차려드리는 거지."

그 사이 반년 동안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버지가 말을 아꼈다. 다만 그해 이후로 이장은 뽑기 전에 종이를 세 번 센다고 했다. 접기 전에 한 번, 접고 나서 한 번, 소쿠리에 넣으며 한 번.

작년 겨울에 오랜만에 그 뽑기를 다시 봤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내가 세대주 대리로 참석했다. 삼십 년 만에 보는 회관 풍경은 그대로였는데 사람만 줄어 있었다. 열여덟 명. 종이 열아홉 장.

내 차례가 와서 소쿠리에 손을 넣었다. 접힌 종이들이 손끝에 닿는데, 이상한 걸 느꼈다. 종이 하나가 차가웠다. 다른 종이들은 사람들 손을 타서 미지근한데, 하나만 겨울 밤공기 온도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옆의 미지근한 종이를 집었다.

빈 종이였다. 제관은 다른 집에 갔다.

뽑기가 끝나고 소쿠리에 한 장이 남았다. 이장님이 집게로 집어 태우러 나갔다. 나는 그게 내가 만졌던 차가운 종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에서 아버지한테 차가운 종이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창밖을 보다가 말했다.

"느이 할아버지도 그 얘길 했어. 만져진다고. 그 종이는."

"다들 알면서 뽑는 거예요? 피해서?"

"피하는 게 아니라 양보하는 거야."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잠깐 있다가 덧붙였다. "저쪽도 뽑기에 끼고 싶은 거 아니겠냐. 마을 일인데. 껴주되, 뽑히지는 않게. 그게 같이 사는 법이야."

서른 명이 안 되는 마을의 제비뽑기에, 사람 아닌 참가자가 하나. 종이는 사람 수보다 늘 한 장 많게. 뽑기는 그 참가자의 종이가 남아야 끝난다.

올겨울에도 뽑기는 있을 거다. 아버지는 이제 거동이 어려워서 내가 갈 거다. 소쿠리에 손을 넣으면 아마 또 찾게 되겠지. 미지근한 종이들 사이의 차가운 한 장을. 찾아서, 피해서, 양보하면서.

마을 일이니까.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마을#동제#전승#시골
괴담 목록으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