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8화. 노인
《없는 주소》 — 연재 8화
네 번째 콜의 요금은 만 사천육백 원이었다.
끝자리를 보고도 눌렀다. 이제는 일부러 눌렀다. 데이터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손님들한테 물어볼 게 생겼으니까. 적동리를 아는 채로 태우는 첫 콜이었다.
출발지는 구시가지의 순댓국집이었다. 손님은 칠십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가게 주인이 부축해 나오면서 말했다. 단골 어르신인데 오늘 좀 과하셨어, 잘 좀 모셔다드려. 등록 목적지는 공단 근처 주공아파트였다.
노인은 타자마자 잠들지 않았다. 그게 처음부터 달랐다. 창에 이마를 대고, 눈을 반쯤 뜬 채로 바깥을 봤다. 취한 사람 특유의 늘어짐이 없었다. 몸만 앉혀놓으면 알아서 자는 게 이 시간대 손님들인데, 노인은 뭘 기다리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사거리에서 노인이 말했다.
"다음 신호에서 우회전이야."
목적지는 직진이었다. 저는 주공아파트로 안내받았습니다, 하니까 노인은 듣는 둥 마는 둥 창밖만 봤다.
"우체국 지나서, 방앗간 골목으로 꺾어."
그 사거리에 우체국은 없다. 방앗간도 없다. 편의점과 휴대폰 대리점과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그런데 노인의 손가락은 정확히 편의점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우체국이 보이는 것처럼.
"물 들어오기 전에 가야 돼."
노인이 말했다. 혼잣말이었는데 발음이 또렷했다. 그 또렷함. 세 번 들어본 또렷함이었다. 나는 신호 대기에 걸린 김에 몸을 반쯤 돌렸다.
"어르신. 적동리 가시게요?"
노인의 눈이 나를 향했다.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완전히 떠졌다. 취기가 걷히는 게 아니라, 다른 게 걷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나를 한참 봤다. 백미러가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적동리를 어떻게 알아."
"어르신이 방금 가자고 하셨잖아요. 우체국 지나서 방앗간 골목."
"내가?"
노인은 정말로 모르는 얼굴이 됐다. 그리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가, 다시 나를 봤다. 이번엔 다르게 봤다. 내 이마와 눈매와 입가를 하나씩 훑는 시선이었다. 오래된 사진에서 아는 얼굴을 찾는 시선.
"너…"
노인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순댓국 냄새와 소주 냄새 사이로, 노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창숙이네 손주 아니냐."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나는 출발해야 해서 앞을 봤고, 그 잠깐 사이에 무슨 말이든 해야 했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창숙.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명치 어디쯤에 걸렸다.
"저희 할머니 성함을 제가… 잘 모릅니다. 외할머니 말씀이세요?"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몇 초 뒤에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스위치가 꺼지듯 잠들어 있었다.
주공아파트까지 십오 분 동안 나는 백미러를 네 번 봤다. 습관의 두 번을 넘겼다. 노인은 계속 잤다. 내비는 그날따라 조용했다. 파란 선도, 재탐색도 없었다. 그게 서운할 지경이었다. 물어볼 게 산더미인데 대답할 것들이 다 잠들거나 꺼져 있었다.
아파트 앞에서 노인을 깨웠다. 노인은 부스스 일어나 지갑에서 현금을 꺼냈다. 앱 결제라고 해도 됐지만 나는 현금을 받았다. 만 사천육백 원 콜에 노인은 만 오천 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사양했다. 사백 원. 받으면 계약이 된다던 박씨의 리스트는 그때 아직 못 받은 때였다. 나중에 그 항목을 읽고 이 밤의 사백 원을 얼마나 오래 생각했는지 모른다.
노인은 차에서 내려서 아파트 입구로 가다가, 멈췄다. 돌아서서 차로 왔다. 나는 창을 내렸다.
"기사 양반."
노인의 눈은 이제 완전히 맑았다. 취한 노인이 아니라, 그냥 잠이 부족한 노인이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나. 차에서."
"…적동리 얘기를 하셨어요."
노인의 얼굴에서 표정이 하나씩 접혔다. 놀람이 접히고, 그 밑에서 아주 오래된 피로 같은 게 나왔다.
"그래. …그랬구먼."
노인은 그 말만 하고 돌아섰다. 걸어가는 뒷모습에 대고 나는 소리쳤다. 어르신, 창숙이라는 분을 아세요? 노인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공동현관 앞에서 잠깐, 반쯤 돌아보고 말했다.
"모르는 게 나아. 서로."
유리문이 닫혔다. 노인의 왼쪽 소매는, 현관 불빛 아래서, 팔꿈치까지 검게 젖어 있었다.
집에 와서 나는 노트 대신 폰을 먼저 열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볼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외할머니 이름. 서류에는 나올 거다. 새벽이라 발급은 아침에 해야 했다. 나는 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창숙이네 손주.
내가 아는 외갓집은 없다. 어머니는 외가 얘기를 안 했고, 명절에 갈 데가 없는 게 우리 집의 정상이었고, 외할머니 얼굴은 사진으로도 못 봤다. 그 없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없는 것에는 익숙해지니까.
없는 외가와, 없는 주소.
두 개의 없음이 같은 없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그 새벽에 처음 했다.
— 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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