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7화. 청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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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주소》 — 연재 7화

누나한테 묻기 전에 먼저 가볼 데가 있었다. 물어볼 거면 알고 물어야 한다. 모르고 물으면 누나는 피할 거고, 우리 남매는 피하는 걸 서로 도와주는 데 이골이 난 사이니까.

일요일에 물류센터가 쉬었다. 나는 아침에 첫 시외버스를 탔다. 청수호까지 한 시간 십 분. 대리 뛰는 밤의 반경 밖으로 나가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버스 창으로 보는 낮의 국도는 낯설었다. 밤에 손님을 태우고 달리던 방향과 같은 북서쪽이라는 걸, 중간쯤 가서 알았다. 파란 선이 가리키던 방향. 나는 창에서 눈을 뗐다.

청수호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댐 전망대, 물문화관, 호수 둘레길. 일요일이라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매점에서 어묵 국물을 파는, 어디에나 있는 평화로운 유원지. 그 물 밑에 마을 세 개가 있다는 안내판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걷기 좋은 곳이었다.

물문화관에 수몰 전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나는 천천히 봤다. 초등학교 운동회, 다리 위의 자전거, 빨래터. 그리고 마을별 전경 사진. 적동리 전경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폰에 찍어온 원룸 사진과 대조했다. 산세가 겹쳤다. 지붕 선이 겹쳤다. 물가의 큰 나무 위치까지.

같은 마을이었다. 어머니의 사진은 적동리였다.

전시 마지막 벽에 이주민 정착 현황 지도가 있었다. 적동리 사람들은 대부분 운평시로 이주했다고 적혀 있었다. 운평. 내가 사는 도시. 내가 밤마다 태우는 취객들의 도시. 서른 몇 가구가 세 동네로 흩어져 정착했다는 설명 밑에, 지금은 2세대·3세대가 살고 있다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둘레길을 십 분쯤 걸으면 망향비가 있었다. 검은 오석에 「望鄕」 두 글자. 그 아래 수몰 3개 리의 이름과, 리별 가구주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적동리 명단을 위에서부터 읽었다. 서른아홉 개의 이름. 김씨가 많았고, 박씨와 정씨가 있었고, 처음 보는 성도 있었다. 명단을 읽는 건 이상한 경험이었다.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는데, 어느 이름 하나가 나를 알아볼 것 같은 기분. 나는 이름 하나하나에 김 부장 얼굴을, 간호사 얼굴을, 골프웨어 얼굴을 대보고 있었다.

명단 맨 아랫줄에서 손이 멈췄다.

마지막 이름이 없었다. 정확히는, 이름이 있던 자리가 있었다. 다른 이름들과 같은 간격, 같은 크기의 자리인데, 글자가 정으로 긁혀 있었다. 실수로 판 걸 지운 게 아니었다. 실수면 갈아내고 다시 팠을 거다. 이건 파낸 글자를 일부러 뭉갠 자국이었다. 획의 흔적이 몇 개 남아 있었지만 읽을 수는 없었다.

서른아홉 명 중에 한 명만, 이름이 지워진 채 서 있었다.

비석 앞에는 시든 꽃다발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그 사이에 흰 국화 한 다발이 있었는데, 그것만 시들지 않았다. 줄기가 아직 젖어 있었다. 오늘이나 어제 놓인 꽃이었다. 30년 전 비석에, 지금도 꽃을 놓고 가는 사람이 있다.

관리사무소가 둘레길 반대편에 있다고 해서 가봤다. 문이 잠겨 있었다. 일요일 휴무. 유리문 안으로 사무실 집기와, 구석에 서 있는 낡은 서버랙 같은 게 보였다. 관공서 시설물에 흔한 풍경이라 그때는 그냥 지나쳤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명단 사진을 확대해서 오래 봤다. 지워진 이름의 남은 획들. 첫 글자에 세로획이 길게 하나. 나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노트에 적었다.

어머니 사진 = 적동리 확정.
이주민 정착지 = 운평. 손님들이 여기 사는 이유가 될 수 있음.
망향비 명단 39명 중 1명 이름 훼손(고의). 훼손자·사유 불명.
최근 것으로 보이는 흰 국화. 놓은 사람 불명.

버스가 운평 시내로 들어설 때쯤 해가 졌다. 나는 창밖의 익숙한 간판들을 보면서 이상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서른아홉 가구의 2세대, 3세대. 한 가구에 자손이 셋씩만 잡아도 백 명이 넘는다. 그 백 명이 이 도시에 흩어져 살고, 밤에 술을 마시고, 대리를 부른다.

그리고 그중 몇이 내 뒷좌석에 탔다.

그날 밤 콜을 잡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손님들 얼굴을 유심히 봤다. 평범한 취객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았다. 평범한 취객과 그 콜의 손님을 가르는 선은 손님한테 있지 않다. 그 선은 삼십 년 전에, 물이 들어오던 어느 마을에 그어져 있었다.

—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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