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49화. 망향비
《없는 주소》 — 연재 49화
망향비의 지워진 이름이 누구 것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명부의 우리 집 장. 세대주 지OO. 마을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 공식 기록이 '전원 이주 완료'가 되려면 명단에서 지워져야 했던 사람. 비석을 세울 때 누군가가 — 관청인지, 차마 그 이름을 새길 수 없던 유족인지 — 정으로 긁어냈을 이름.
긁어낸 자국을 삼십 년 만에 채우러, 우리는 토요일에 청수호로 갔다.
나와, 외출 허가를 받은 누나와, 박씨였다. 박씨는 트럭에 뭘 싣고 왔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오석이었다. 석재상 하는 후배한테 부탁했다고 했다. 돌에는 이미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지OO.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
「마지막까지 마을을 지킨 사람」
비석 옆에 그 돌을 세웠다. 정식 허가 같은 건 없었다. 망향비 주변에 이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것들이 원래 많았다. 소주병, 시든 꽃, 고향 흙을 담았다는 항아리. 그 곁에 돌 하나가 더해지는 거였다. 관리사무소 쪽에서 노인이 나와 지켜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허가였다.
누나가 흰 국화를 놓았다. 유정이 다니던 자리 옆에. 그리고 우리는 준비해 간 것을 꺼냈다. 미역국이 든 보온병과 종이컵 네 개. 잔 대신 국을 올리는 제사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우리 집 제사는 이제 우리가 정한다. 참기름은 마지막에 둘렀다.
박씨가 국 한 컵을 물가 쪽에 놓으며 말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올해는 밤에 안 오고 낮에 왔어요."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렀다. 향토자료실. 사서가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몇 주 동안 밤마다 정리한 원고였다. 제목은 「적동리에 관한 짧은 기록」.
백서의 각주 17이 말하지 않은 것들을 적었다. 이주 확인 대장의 빈 서명란. 붉은 도장. 물이 빨리 들어온 밤. 배 한 척과 여섯 자리. 다섯 명의 생환.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한 사람의 이름. 괴담은 다 뺐다. 콜도, 파란 선도, 물 아래 마을도. 그런 건 우리 집 노트에만 있으면 된다. 세상 기록에 필요한 건 사실의 뼈대다. 그 밤에 그 마을에 사람이 남아 있었고, 그 사람에게 이름이 있었다는 것.
사서는 원고를 받아 넘겨보더니 말했다.
"향토자료 기증이네요. 등록해드릴게요. 서가에 꽂히면 검색도 돼요."
"검색이 돼요?"
"그럼요. 제목이랑 본문 키워드로요."
나는 그게 이상하게 벅찼다. 검색이 된다는 것. 적동리를 치면 결과가 나온다는 것. 지도에 없는 주소가, 이제 도서관 검색창에는 있게 된다는 것.
집에 와서 나는 명부를 폈다. 마지막 부탁이 하나 남아 있었다. 우리가 이어 적어야겠네, 라던 누나의 말. 우리는 붓펜을 샀고, 누나가 병실에서 연습을 했고, 그 주말에 우리 집 장의 어머니 이름 아래 두 줄을 보탰다.
한소윤. 한도윤.
물 밖에서 태어난 첫 아이들의 이름이 명부에 올랐다. 서툰 붓글씨였다. 삐뚤었다. 지방을 쓸 때 획을 덧대면 안 된다던 어느 집 규칙이 생각나서 한 번에 내리썼더니 더 삐뚤었다. 그래도 덧대지 않았다. 이름은 반듯한 것보다 한 번에 쓰는 게 중요하다고, 어디선가 배운 것 같아서.
명부는 유품 상자에 모셨다. 어머니의 사진들과 편지와 이주 안내문 옆에. 상자는 이제 열리는 상자가 됐다. 제사 때마다 열 거니까. 우리 집 제사는 이제 지낼 곳이 있다. 물가도 아니고 산도 아니고, 명부 앞이면 어디든.
노트에 적었다.
망향비 옆 돌 1기. 향토자료 기증 1건. 명부 등재 2명.
지워진 이름 복원 완료. 두 번째 죽음 방지 조치 완료.
이 항목들은 저쪽 장부에도 적혔을까. 적혔을 것 같다. 그쪽 장부는 꼼꼼하니까. 어느 쪽 장부에 적히든, 이제 셈은 맞았다.
— 50화(최종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업체는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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