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48화. 정산
《없는 주소》 — 연재 48화
운행 완료 알림을 누르니 정산 화면이 열렸다.
운행 번호: (십사 년 전의 그 번호)
픽업: 적동로 19-4
목적지: 운평요양병원
승객: 1건
요금: 0원
상태: 완료
요금 0원. 박씨의 리스트 다섯 번째 항목이 생각났다. 요금은 받지 말 것. 받으면 계약이 된다. 저쪽도 같은 규칙을 지킨 거다. 이 운행에 값을 매기면 나를 고용한 게 되니까. 0원은 셈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건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집안일에는 품삯이 없다.
화면을 캡처했다. 저장됐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운행 내역에 그대로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첫 기록.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한 운행이 세상 장부에 남았다.
그 주에 여러 개의 장부가 닫혔다.
수요일에 쉼터에 갔더니 박씨가 커피를 뽑아놓고 있었다. 수요일부터 커피나 마시자던 약속대로. 나는 그 밤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했고, 박씨는 끝까지 듣고 나서 자기 폰을 보여줬다. 콜 앱 화면이었다.
"어젯밤에 처음으로, 아무 콜도 안 왔어."
이십 년 만의 첫 무소식이었다. 박씨는 그 화면을 신기한 물건 보듯 봤다.
"미납이 없어진 거야. 네 완주로 장부가 통으로 닫히면서, 내 건도 같이." 박씨는 커피를 마셨다. "이십 년을 물던 독촉이 하루아침에 끝나니까 이상하네. 시원한 게 아니라 허전해. 빚쟁이도 이십 년이면 식구야."
그리고 박씨는 달력을 봤다. 다음 달에 수몰 기념일이 있었다.
"올해는 물가에 안 가도 될 것 같아."
어머니 기일에 처음으로 물가 대신 산소에 가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산을 싫어하셨지만, 이제 물가에 안 계시니까, 산소가 맞겠다고.
뱃사공 노인한테도 갔다. 청수정보 컨테이너의 서버는 켜져 있었는데, 초록 불의 깜박임이 달라져 있었다. 노인 말로는 완주 다음 날부터 배차 프로세스가 조용하다고 했다. 기계가 도는데 일이 없는 상태. 퇴근 못 한 직원처럼 서 있는 서버를 노인은 아직 못 끄고 있었다.
"삼십 년을 같이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끄는 건 예의가 아니지." 노인은 서버랙을 닦으며 말했다. "천천히 끌 거야. 전원 내리고, 분해하고, 마지막엔 저 노랑 같이 호수에 돌려줘야지. 배도 일 끝나면 뭍에 올리는 거야."
유정과는 그 주 새벽에 통화했다. 두 시 반에 걸었는데, 신호가 다섯 번 가고 받았다. 받는 게 늦어진 것도 처음이었다.
"네, 기사님." 목소리에 처음 듣는 것이 섞여 있었다. 졸음이었다. "죄송해요, 졸았어요. 저 요즘 잠이 와요. 새벽에 잠이 온다니까요. 삼 년 만이에요."
"낮은요?"
"어제 낮에 카페에 갔는데, 점원이 주문을 받았어요. 한 번에요." 유정은 그 시시한 문장을 기적처럼 말했다. "아직 반쯤은 흐릿한데, 진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명부에 제 할머니도 계셨죠? 불러주셨죠?"
"불렀어요. 누나가 산 사람 이름은 복이 된다고 해서, 유정 씨 성씨 집안은 특히 크게 불렀어요."
유정은 웃었다. 소리 내서. 매뉴얼이 완전히 없는 웃음이었다.
"내비 목소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유정 씨 목소리, 두고 왔다면서요."
"그러게요. 그건 아직 저쪽에 있나 봐요. 근데 괜찮아요." 유정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생각해보면 나쁜 데 쓰인 적이 없어요, 제 목소리. 삼 년 동안 안내만 했는걸요. 길 잃지 말라고. 그 정도는… 두고 와도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목소리 하나쯤은 좋은 데 두고 살아도 되죠."
전화를 끊기 전에 유정이 말했다. 이제 새벽 상담원은 없어도 되겠어요. 다음에 통화할 일이 있으면 낮에 하죠, 기사님. 커피숍 같은 데서. 나는 좋다고 했다. 그 통화가 새벽 회선의 마지막 통화였다.
노트에는 그 주의 정산을 이렇게 적었다.
운행 완료. 요금 0(품삯 없음 = 집안일).
박씨: 독촉 종료(20년). 조씨: 확인 필요. 유정: 낮 회복 중. 뱃사공: 퇴역 절차.
소윤: 수치 호전세. 담당의 "설명이 잘 안 되는데, 좋은 쪽으로."
마지막 줄은 며칠 뒤에 보탰다.
이식 코디네이터 전화 옴. 순번이 앞당겨졌다고. 앞 순번 몇 명이 이런저런 사유로 빠졌다고. 사유는 안 물었다. 세상에는 그냥 받는 게 예의인 전화도 있다.
— 4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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