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4화. 박씨의 커피
《없는 주소》 — 연재 4화
기사 쉼터는 공영주차장 구석의 컨테이너다. 난로 하나, 자판기 하나, 접이식 의자 여덟 개. 새벽 두세 시면 콜 끊긴 기사들이 몸을 녹이러 모인다. 서로 이름은 잘 모른다. 차종이나 동네로 부른다. 나는 그냥 총각이고, 박씨는 다들 박씨라고 불렀다. 이십 년을 뛴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서운동 건 사흘 뒤 새벽, 쉼터에 박씨와 나 둘뿐인 시간이 왔다. 커피를 뽑는데 박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또 받았지."
컵을 뽑다가 멈췄다. 박씨는 난로 앞에서 장갑을 말리고 있었다. 나를 보지도 않았다.
"뭘요."
"그 콜."
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난로 앞에 앉았다. 부인해봤자 소용없는 상대라는 건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화면에 떠."
박씨는 장갑을 뒤집으며 천천히 말했다. 이 양반 말은 원래 반 박자씩 늦게 온다.
"콜 화면 말이야. 출발지, 목적지, 요금. 남들 눈엔 똑같아 보이는데, 그 콜은 하나가 달라. 요금 숫자 끝이 0이 아니야. 대리 요금이 백 원 단위로 끝나는 거 봤어? 만 구천 원이 아니라 만 구천이백 원. 이만 팔천 원이 아니라 이만 팔천삼백 원. 화면 넘어가는 반 초 사이에 그게 보이면, 나는 안 눌러."
나는 폰을 꺼내 노트 사진을 봤다. 내가 적어둔 요금. 이만 팔천 원, 만 구천 원.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적었다. 박씨가 내 얼굴을 보더니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기억엔 그렇게 남아. 반올림돼서. 그것까지가 그 콜이야."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박씨는 그동안 커피를 한 잔 더 뽑아서 내 옆에 놓았다. 이 양반이 남한테 커피를 뽑아주는 걸 나는 처음 봤다.
"콜이 이상한 게 아니라, 손님이 이상한 거야."
박씨가 말했다.
"차는 멀쩡해. 길도 멀쩡해. 앱도, 회사도 멀쩡해. 문제는 뒷자리에 타는 게 뭐냐는 거지. 그러니까 네가 지킬 건 운전이 아니라 손님 응대야. 알아들어?"
모르겠는데요, 하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박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게 정상이라는 끄덕임이었다.
"두 개만 외워. 첫째. 내리게 해달라는 데서 내려주지 마. 도착했다는 데서 내려줘. 가다 보면 손님이 깨서 세워달라고 할 때가 있어.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다 왔다고. 창밖을 봐. 네 눈에 보이는 게 등록된 목적지가 아니면, 그냥 가. 손님이 화를 내도 가. 문 열려고 하면 잠그고 가."
박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둘째. 새벽 네 시 전에 끝내. 네 시 넘어서까지 태우고 있으면 안 돼. 그때부턴 네가 기사가 아니게 되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박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얘기를 아주 조금 흘렸다. 나도 옛날에 받아봤어. 그 콜. 그 이상은 그날 밤엔 나오지 않았다.
일어서기 전에 나는 참았던 질문을 했다.
"그 주소, 어딘지 아세요?"
박씨의 손이 잠깐 멈췄다. 장갑을 접는 손이었다.
"주소는 몰라도 돼."
"손님들이 자꾸 같은 데로 가자는데, 어딘지는 알아야—"
"어딘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박씨가 처음으로 내 눈을 똑바로 봤다. 난롯불에 얼굴 반쪽이 붉었다.
"왜 하필 너한테 오는지가 중요한 거야. 이 바닥에 기사가 몇 명인 줄 알아? 운평에만 수백이야. 아마 오백은 넘을걸. 그 콜이 아무한테나 뜨는 게 아니야. 나는 이십 년 봤어. 받는 놈들만 받아."
받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요, 라고 물으려는데 박씨가 컨테이너 문을 밀었다. 찬 공기가 훅 들어왔다. 박씨는 나가면서 등으로 말했다.
"리스트가 있어. 근데 아직 못 줘."
"왜요."
"네가 아직 안 물었으니까. 그 주소가 어딘지 말고 — 왜 너한테 오는지를. 그걸 물으러 오면 줄게."
문이 닫혔다. 나는 난로 앞에 혼자 남아서 식은 커피 두 잔을 마셨다. 밖에서 박씨 트럭 시동 소리가 나고, 멀어졌다.
집에 와서 노트에 오늘 들은 걸 다 적었다. 요금 끝자리. 내려달라는 데서 내려주지 말 것. 새벽 네 시. 적다가 마지막 줄에서 볼펜이 오래 멈췄다.
왜 나한테 오는가.
그 질문은 적어놓고 보니 이상하게 익숙했다. 살면서 몇 번 해본 질문이었다. 왜 하필 우리 부모님이었나. 왜 하필 누나가 아팠나. 답이 없어서 접어둔 질문들과 같은 서랍에 들어가는 질문. 나는 그 서랍을 여는 게 무서워서 노트를 덮었다.
콜은 다음 주에도 왔다.
—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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