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39화. 전수
《없는 주소》 — 연재 39화
D-2. 박씨가 쉼터를 통째로 빌렸다.
빌렸다는 건 과장이고, 다른 기사들한테 오늘 밤은 오지 말라고 문자를 돌렸다는 뜻이다. 이십 년 고참의 문자는 그 바닥에서 공문서다. 밤 열한 시부터 새벽까지, 컨테이너에는 박씨와 나뿐이었다.
박씨는 난로에 주전자를 올리고, 종이컵 두 개에 믹스커피를 타고, 강습을 시작했다. 순서도 교재도 없는 강습이었다. 이십 년 치 경험이 생각나는 순서대로 나왔고, 나는 노트에 받아 적었다.
"들어가는 길은 걱정 마. 열린 길은 순해. 파란 선 따라가기만 하면 돼. 재촉하지도 않아. 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선도 기다려."
"물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창문 다 올려. 히터는 외기 말고 내기순환. 냄새가 차 안에 고이면 안 돼. 냄새는 저쪽 공기야. 마시는 건 어쩔 수 없는데 고이게 두지 마."
"라디오는 끄고 가. 켜져 있으면 저쪽이 그걸로 말을 걸어. 말은 한번 시작되면 끊기가 어려워. 필요한 안내는 내비로만 받아."
"물가에 서면 내리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운전석에서 내리지 마. 십칠 년 전 조가는 문고리까지 잡았다가 살았고, 나는 내렸다가 이십 년을 물었어. 기사는 운전석에 있을 때만 기사야. 내리는 순간 방문자가 돼."
나는 받아 적다가 물었다. "그럼 할머니가 타실 때는요? 문을 열어드려야—"
"저쪽 문은 저쪽이 열어." 박씨는 단호했다. "너는 잠금만 풀어. 그거면 돼."
강습은 새벽 두 시를 넘겼다. 박씨는 돌아오는 길 얘기로 넘어갔고, 여기서부터 목소리가 낮아졌다.
"돌아오는 길이 진짜야. 들어가는 건 초대받은 길이라 순한데, 나오는 건… 나오는 건 저쪽 입장에선 배웅이잖아. 삼십 년 만에 만난 사람을 보내는 배웅. 붙잡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고, 저쪽도 마음은 마음이야."
"구체적으로 뭐가 있는데요."
"목소리." 박씨가 말했다. "뒷좌석에서 말을 걸 거야. 처음엔 할머니 목소리로. 그러다 네가 아는 목소리들로 바뀔 거야. 어머니 목소리, 누나 목소리. 뒤 좀 보라고, 얼굴 한 번만 보라고. 그게 저쪽 마음이 나쁜 게 아니야. 보고 싶은 게 죄냐. 근데 운전자가 뒤를 보면 차가 서. 차가 서면 운행이 끊겨. 운행이 끊긴 자리가 어딘지 생각해봐. 물 밑이야."
나는 볼펜을 멈췄다.
"백미러는요. 저 백미러 두 번 보는 버릇 있잖아요. 유정 씨는 그게 제 매뉴얼이라고, 버리지 말라고 했어요."
박씨는 한참 생각했다. 이 양반이 유정의 말을 반박하는 걸 나는 본 적이 없다. 새벽 목소리의 말은 쉼터의 법전 위에 있었다.
"버리지 마. 대신 규칙을 붙여." 박씨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두 번까지야. 출발할 때 하던 대로, 두 번. 확인은 두 번이면 끝나. 세 번째부터는 확인이 아니라 미련이야. 미련으로 보는 백미러엔 딴 게 비쳐. 알아들었어?"
두 번까지는 습관. 세 번째부터는 미련. 나는 그 문장을 노트에 크게 적었다.
새벽 세 시 반쯤, 강습이 바닥났다. 박씨는 마지막으로 자기 수첩에서 그 원본 페이지를 찢어서 나한테 줬다. 복원된 마지막 항목까지 적힌, 이십 년짜리 종이.
"이건 부적이 아니야. 체크리스트야. 부적은 믿는 거고 체크리스트는 확인하는 거야. 너는 확인하는 놈이니까 이게 맞아."
나는 종이를 지갑에 넣었다. 명함과, 물풀 잎 지퍼백과, 찢긴 사본 옆에. 삼 년 치 물증들 옆에 이십 년 치 경험이 들어갔다.
컨테이너를 나서기 전에 박씨가 물었다. 처음으로 업무 밖의 질문을.
"무섭냐."
나는 생각해봤다. 정직하게.
"모르겠어요. 무서운 건지, 이게 무서움인지." 나는 히터 꺼진 새벽 공기에 입김을 뱉었다. "저희 집은 십사 년 전에 그 길에서 부모님을 잃었어요. 근데 이제 와서 보니까 그건 사고가 아니라 미완료였어요. 미완료라는 건, 아직 하다 만 일이 있다는 거잖아요. 부모님이 하다 만 일이요. 그걸 제가 마저 하러 가는 건데… 이게 무서움이면 무서움이 왜 이렇게 숙제 같은지 모르겠어요."
박씨는 픽 웃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한 번 쳤다. 이십 년 치 강습의 수료 도장 같은 손이었다.
"가서 끝내고 와. 수요일부터는 다시 쉼터 커피나 마시자."
수요일. D-데이 다음다음 날. 박씨는 그날짜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렸다. 그 아무렇지 않음이, 그 밤 받은 것 중에 제일 큰 거였다.
— 40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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