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2화. 기록 없음
《없는 주소》 — 연재 2화
다음 날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옮기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이만 팔천 원. 결제 완료 알림을 두 눈으로 봤는데 세상에서 없어진 돈. 점심시간에 나는 대리 앱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낮 상담원은 친절했고 소용이 없었다. 기사님, 어제 운행 내역은 두 건입니다. 세 건이었다고 하니까, 조회되는 건 두 건이라고 했다. 픽업 시간과 장소, 차종, 손님 인상착의까지 불러줬다. 상담원은 잠깐 조회하는 척하더니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해당 시간대에 기사님 앱은 미배차 상태였습니다. 미배차. 내가 검은 세단을 몰고 시내를 가로지르던 사십 분 동안, 서버에 나는 쉬고 있는 사람이었다.
밤 열한 시에 다시 걸었다. 이번엔 다른 목소리가 받았다. 낮 상담원보다 톤이 낮고, 말이 매뉴얼처럼 정확했다.
"네, 기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어제 자정 넘어서 태운 손님, 청람아파트, 이만 팔천 원. 키보드 소리가 한동안 나고, 상담원이 말했다.
"기사님, 해당 운행은 저희 기록에 없습니다."
없다는 걸 압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없는 게 이상해서 전화드린 거예요. 결제 알림까지 왔었어요.
키보드 소리가 멎었다. 잠깐의 공백. 콜센터 특유의 배경 소음도 없었다. 새벽 상담실은 조용한가 보다, 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알림 내역이 남아 있으신가요?"
없어졌어요. 알림도.
"…그러시겠죠."
그러시겠죠. 매뉴얼에 없는 문장이었다. 상담원도 그걸 아는지 바로 정정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접수해드리겠습니다, 하는 표준 문장들이 이어졌다. 나는 접수번호를 받아 적었다. 끊기 직전에 상담원이 물었다. 톤이 반 칸 내려간 목소리로.
"기사님. 그 콜… 처음이세요?"
네? 하고 되물었을 때는 이미 표준 문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폰을 든 채로 잠깐 서 있었다. 처음이세요, 라는 질문은 두 번째가 있는 사람들한테 하는 질문이다.
명함이 남아 있었다. 성진교역 영업2부 김상구 부장. 회사는 검색하니 나왔다. 시내 오피스 빌딩 칠 층, 무역회사, 홈페이지도 멀쩡했다. 없는 주소를 부른 손님의 회사는 있는 회사였다. 나는 다음 날 점심에 명함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받았다.
"영업2부 김상구입니다."
멀쩡한 목소리였다. 나는 대리기사라고 밝히고, 그저께 밤에 고깃집에서 청람아파트까지 모셨던 기사라고 말했다. 두고 내리신 물건이 있는 것 같아서요, 라고 둘러댔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명함은 두고 내린 물건이라면 물건이니까.
김 부장은 잠깐 말이 없다가 웃었다.
"기사님,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 그저께 대리 안 불렀어요."
부르셨어요. 고깃집 앞에서, 일행분이 명함도 주셨고요.
"그저께면 화요일… 아, 회식은 했지. 했는데 저 일찍 나와서 지하철 타고 갔어요. 열한 시 막차. 교통카드 찍힌 기록도 있을 텐데. 열두 시 전에 집에 들어갔다니까요."
목소리에 거짓이 없었다. 사람이 거짓말할 때 나는 균열 같은 게 없었다. 나는 알겠다고, 착오인 것 같다고 하고 끊었다. 끊고 나서 명함을 다시 봤다. 김상구. 종이는 여전히 지갑에 있었다. 내가 태운 사람은 자정 넘어 고깃집 앞 인도 턱에 앉아 있었고, 그 사람 일행이 이 명함을 내 손에 쥐여줬다. 그런데 명함의 주인은 그 시간에 집에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그날 밤 누군가를 태웠다. 기록상 나는 아무도 안 태웠다. 명함의 주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럼 뒷좌석에서 적동로 19-4를 부른 건 누구였나.
경우의 수를 세워봤다. 하나, 김 부장이 거짓말을 한다. 필요가 없다. 대리비 떼먹은 것도 아니고. 둘, 동명이인이거나 명함만 다른 사람 것이다. 가능하다. 회식 자리에서 남의 명함이 돌아다니는 일은 있다. 셋. 셋은 세우다가 말았다. 셋부터는 운전에 방해가 되는 종류의 생각이었다.
그날 밤에도 콜은 떴고 나는 뛰었다. 정상 콜 네 건. 취객 셋과 종업원 한 명. 다들 있는 주소로 갔고, 기록도 다 남았고, 소매도 다 말라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밤이 이렇게 고마운 일인 줄 몰랐다.
쉼터에 들렀을 때 박씨가 있었다. 컵커피를 뽑는데 박씨가 이쪽을 봤다. 뭐라고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무슨 말을 하겠나. 없는 주소를 부르는 손님이 있었는데 그 손님이 그 손님이 아니었어요? 미친놈 소리 듣기 좋은 문장밖에 안 만들어졌다.
대신 박씨가 지나가면서 딱 한마디를 놓고 갔다. 문을 밀고 나가면서, 뒤도 안 보고.
"콜 가려 받아."
그게 다였다. 나는 컵커피를 들고 컨테이너에 혼자 남았다. 가려 받으라는 말은 가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뭘 보고?
폰 화면의 콜 목록은 평소와 똑같아 보였다. 출발지, 목적지, 요금. 나는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똑같아 보이는 것들 속에서 뭔가를 가려내는 눈이 있다는 것. 그 눈을 가진 사람이 내 화면을 보고 커피를 남긴 채 일어났었다는 것.
접수번호로 처리 결과 문자가 온 건 그 새벽이었다.
"문의하신 건은 조회된 내역이 없어 종결되었습니다."
발신 시각이 찍혀 있었다. 04:00. 초 단위까지 찍히는 회사 문자가, 정각이었다. 정각에 오는 문자는 사람이 보내는 게 아니다. 그건 그때도 알 수 있었다.
— 3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업체는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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