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소 — 10화. 4.4킬로미터
《없는 주소》 — 연재 10화
다섯 번째 콜은 끝자리 팔백 원이었다.
손님은 삼십 대 회사원. 타자마자 잠들었고, 시 경계 못 미쳐서 그 주소를 말했고, 갈림길에서 내비가 켜졌다. 꺼진 화면, 파란 선,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다 아는 순서였다. 모르는 건 하나였다. 저 선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는가.
그날 나는 처음부터 마음을 반쯤 정해놓고 있었다. 등록 목적지까지는 사십 분 여유가 있었고, 시계는 한 시 십 분이었고, 네 시까지는 멀었다. 조건을 따져놓은 것 자체가 이미 답을 정했다는 뜻이다.
갈림길에서 나는 파란 선을 따라 우회전했다.
처음 오 분은 아는 길이었다. 공단 뒤로 빠지는 이차선. 가로등이 드물어지고 화물차 몇 대가 마주 오고. 그다음부터 모르는 길이 나왔다. 운평에서 삼 년을 뛰었다. 이 방향 도로는 머릿속에 있다. 공단 이차선이 끝나면 축사 낀 농로가 나와야 한다. 농로가 아니라 산으로 붙는 포장도로가 나왔다. 중앙선이 없는, 그런데 노면은 이상하게 새것 같은 길.
"직진입니다."
내비가 말했다. 파란 선이 산굽이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헤드라이트에 나무들이 하얗게 일어섰다 넘어갔다. 백미러를 봤다. 손님은 자고 있었다.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앞서가는 차도 없었다. 이 길에는 우리뿐이었다.
오 분을 더 들어갔다. 길은 계속 위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래로 향했다. 산을 넘는 게 아니라 산 안쪽 어딘가로 내려가는 경사. 창문을 조금 내려봤다. 물 냄새가 들어왔다. 강도 호수도 없는 산중에서, 분명한 물 냄새.
"1.2킬로미터 앞에서 목적지 부근입니다."
그 안내가 나왔을 때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목적지 부근. 1.2킬로미터. 십오 년 된 습관 같은 목소리로 내비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순간 박씨 얼굴이 떠올랐다. 새벽 네 시 전에 끝내. 도착했다는 데서 내려줘. 박씨의 규칙들은 전부 도착을 전제로 한 규칙이 아니었다. 도착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한 규칙이었다.
그리고 뒷좌석의 손님. 나는 이 사람을 등록된 목적지로 데려다줘야 하는 사람이다. 1.2킬로미터 앞의 '목적지'는 이 사람의 목적지가 아니다. 적어도 깨어 있는 이 사람의 목적지는.
유턴할 자리도 없는 길이라 나는 후진으로 이십 미터를 물러서 겨우 차를 돌렸다. 돌리는 동안 내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로 이탈을 안내하지 않는 내비는 처음이었다. 화면의 파란 선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꺼진 검은 화면에, 아주 잠깐, 뭔가 비쳤다. 화면에 비친 것은 각도상 뒷좌석이어야 했다.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실루엣. 나는 백미러를 봤다. 손님은 시트에 기대 자고 있었다. 화면 속 실루엣은 등을 세우고 똑바로 앉아 있었다.
한 번 깜박이고 화면은 그냥 검은 화면이 됐다.
나는 그 길을 나와서 등록 목적지까지 정확히 규정 속도로 갔다. 과속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다. 손이 그 이상을 안 밟았다.
손님은 아파트 앞에서 멀쩡히 내렸다. 왼쪽 소매가 젖어 있었고, 요금은 앱으로 결제됐고, 그 기록은 아침이면 사라질 거였다. 손님이 들어가고 나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다 계기판을 봤다.
트립미터. 나는 매일 밤 리셋한다. 유류비 계산 때문에 몸에 밴 습관이다. 오늘 밤 주행거리를 머릿속으로 짚어봤다. 콜 세 건의 구간, 공차 이동, 그리고 아까 그 산길 왕복. 들어간 만큼 나왔으니 왕복 거리는 같아야 한다.
계기판 숫자에서 4.4킬로미터가 비었다.
들어갈 때 나는 콜 잡은 지점부터 회차 지점까지를 눈으로 봤다. 대략 구 킬로미터. 나오는 길은 같은 길이었다. 같은 커브, 같은 나무들. 그런데 트립미터로는 사점몇 킬로미터 만에 공단 이차선이 나왔다. 나올 때 길이 짧았다.
거리는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물건이 아니다. 도로는 고무줄이 아니다. 나는 물류센터에서 검수 일을 한다. 수량이 안 맞으면 원인이 있다. 전산 오류거나, 오배송이거나, 도난. 이 사점사 킬로미터는 어느 항목인가.
노트에 적었다.
진입 시도 1회(중단). 회차 지점: 목적지 1.2km 전.
물 냄새. 새 노면. 내비 화면의 실루엣(미확인).
복귀 거리 -4.4km. 원인 불명.
그리고 그 아래 한 줄.
그 길은 들어가는 만큼 나오는 길이 아니다. 다음엔 더 짧을지도 모른다. 나오는 길이 0이 되는 지점이, 목적지일 것이다.
적어놓고 보니 손이 떨렸다. 무서워서만은 아니었다. 계산이 서기 시작해서였다. 나는 계산이 서면 실행하고 싶어지는 인간이다. 그 성격으로 빚도 버텼고, 그 성격 때문에 언젠가 저 길을 끝까지 갈 것 같았다.
박씨를 찾아가야 했다. 물어볼 게 생겼으니까. 그 주소가 어딘지 말고. 왜 나한테 오는지.
— 11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업체는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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