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호텔 위탁 특약 동의서
추석 연휴에 강아지를 맡길 데가 없어서 애견호텔을 검색했다. 유명한 곳들은 다 만실이었고, 외곽에 새로 생긴 곳 한 군데만 자리가 있었다. 후기가 적었지만 시설 사진이 좋았다. 예약하고 갔더니 접수대에서 기본 계약서 말고 종이를 한 장 더 내밀었다. 특약 동의서라고 했다.
"저희는 특약 동의가 필수예요. 읽어보시고 서명해 주세요."
항목은 이랬다. 폰으로 찍어뒀다.
**위탁 특약 사항**
1. 픽업은 오후 8시 이전을 권장합니다. 8시 이후 픽업 시, 인계받는 아이가 맡기신 아이가 맞는지 이름을 불러 확인해 주십시오. 이름에 반응하는 아이만 인계받으시면 됩니다.
2. 실시간 CCTV 앱은 약 6분 지연 송출됩니다. 화면 속 아이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오래 응시하는 경우, 앱을 종료하셨다가 잠시 후 다시 접속해 주십시오. 이는 아이의 분리불안 예방을 위한 조치입니다.
3. 산책 대행은 오후 5시 이전에만 진행됩니다. 5시 이후 시간대가 표시된 산책 사진이 전송되는 경우 확인하지 마시고 삭제해 주십시오. 사진 속 산책로는 저희 호텔 부지가 아닙니다.
4. 간식 추가 결제 알림이 발송되었으나 결제하신 적이 없는 경우, 아이가 간식을 나누어 먹은 것입니다. 추가 요금은 청구되지 않습니다. 누구와 나누었는지에 대한 문의는 받지 않습니다.
5. 퇴실 후 3~7일간 아이가 빈 공간을 향해 꼬리를 흔들거나 놀이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따라온 것은 늦어도 일주일 안에 돌아갑니다. 아이가 무는 시늉을 하는 방향으로 간식을 던지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6. 본 특약에 동의하지 않으시면 위탁이 불가합니다.
지금 보면 왜 서명했나 싶을 거다. 그런데 연휴 전날에 강아지를 안고 서서 이걸 읽으면, 이상한 문구보다 "위탁 불가"가 더 크게 보인다. 서명했다.
연휴 나흘 동안 CCTV 앱을 자주 봤다. 우리 애는 잘 놀았다. 둘째 날 밤에 한 번, 애가 카메라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오래. 화면 속 다른 개들은 다 자는데 우리 애만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6분 지연이라고 했으니까 그건 6분 전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내가 앱을 켠 순간에 정확히 맞춰서 고개를 든 것처럼 보였다. 2번 항목대로 앱을 껐다.
픽업은 일부러 낮에 갔다. 그래도 1번 항목대로 했다. 데리고 나온 애 앞에 쪼그려 앉아서 이름을 불렀다. 애가 꼬리를 치면서 달려들었다. 우리 애가 맞았다. 접수대 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잘 확인하셨어요." 칭찬받을 일인가 싶었는데, 그 말투가 어쩐지 진심이었다.
집에 온 뒤가 문제였다.
5번 항목 그대로였다. 우리 애가 거실 구석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놀이 자세를 하고, 아무것도 없는 데를 향해 앞발을 낮추고 엉덩이를 들었다. 혼자 놀던 버릇이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우리 애는 원래 그 자세를 나한테만 한다. 상대가 있어야 하는 자세다.
사흘째부터는 사료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다. 살은 안 쪘다.
일주일째 되는 날 밤, 애가 현관을 보고 낑낑댔다. 나가고 싶은 소리가 아니라 배웅하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러다 뚝 그치고, 자기 방석에 가서 엎드렸다. 그 뒤로 구석을 보는 일은 없어졌다. 특약 5번이 말한 일주일이 맞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앱에서 알림이 왔다. 그 호텔 앱을 아직 안 지웠었다.
"[재방문 쿠폰] 지난 위탁 시 아이와 잘 지냈던 친구가 아이를 기다립니다. 동반 입실 시 1견 요금으로 모십니다."
동반 입실. 1견 요금.
앱은 지웠다. 쿠폰 유효기간이 지나면 그 친구가 어떻게 되는 건지는, 생각 안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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