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작년에 결혼했다. 결혼식 자체는 순조로웠다. 이상한 건 정산에서 나왔다.
식 끝나고 처가 식구들과 축의금 정산을 했다. 방명록 서명과 봉투 수를 대조하는 작업이다. 신랑 측 방명록 서명 백사십이 명. 봉투 백사십삼 개.
하나가 많았다.
서명 안 하고 봉투만 내는 하객이야 있다. 문제는 그 남는 봉투였다. 이름이 없었다. 겉면이 백지였다. 요즘 봉투는 예식장에 비치된 걸 쓰니까 축하 문구는 인쇄돼 있는데, 이건 인쇄도 없는 순백지 봉투였다. 그리고 안에 든 게 수표도 지폐도 아니었다.
옛날 돈이었다.
만 원권 다섯 장. 지금 만 원권이 아니라 예전 만 원권. 세종대왕은 같은데 크기가 크고 색이 다른, 이십몇 년 전에 쓰던 구권이었다. 상태가 이상할 만큼 좋았다. 은행에서 갓 나온 것처럼 빳빳한 구권 다섯 장.
장난인가 했다. 그런데 장난치고는 오만 원이 진짜 돈이었다. 조폐공사 기준으로 유효한.
어머니한테 봉투를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구권을 보시더니 웃으려다가, 웃음이 이상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봉투를 한참 들고 계셨다.
"너 돌잔치 때." 어머니가 말했다. "느이 큰아버지가 그러셨어. 이 녀석 장가갈 때 축의금은 내가 제일 먼저 낸다. 도장 찍어놓는다, 하고."
큰아버지는 내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다. 이십몇 년 전에. 나는 얼굴도 기억 못 한다.
어머니 말로는 큰아버지가 그 말을 하고 정말로 당신 지갑에서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내 어머니한테 맡기려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웃으면서 사양했다고. 애 장가가 언제라고 벌써 그러시냐고. 큰아버지는 그럼 그때 가서 내지 뭐, 하고 도로 지갑에 넣으셨다고 한다.
그때 가서 내지 뭐.
정산 자리가 조용해졌다. 아내가 봉투를 다시 확인했다. 백지 봉투 뒷면, 풀로 붙이는 자리 안쪽에 뭐가 있었다. 연필로 아주 흐리게 쓴 글씨. 접착면에 가려 겉에서는 안 보이는 자리였다.
"먼저 낸다고 했다."
정산은 어떻게 처리했느냐면, 어머니가 그 오만 원을 축의금 대장에 올리자고 하셨다. 이름 칸에는 큰아버지 함자를 적었다. 백사십삼 번째 하객으로. 그리고 그 돈은 은행에 넣지 않고 어머니가 따로 봉투째 보관하기로 했다. 신권으로 바꾸지도 않고.
"축의금은 받으면 갚는 거야." 어머니가 봉투를 챙기며 말했다. "느이 큰집에 경사 있을 때 이 봉투로 갚아야지. 그래야 셈이 끝나."
여기까지면 따뜻한 이야기다. 내가 이 글을 미스터리 게시판에 쓰는 이유는 마지막 하나 때문이다.
식장 CCTV를 확인할 일이 있었다. 축의대 근처에서 아내 회사 동료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예식장에 부탁해 그 구간 영상을 같이 봤다. 지갑은 딴 데서 나왔고, 대신 나는 축의대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됐다.
봉투 백사십삼 개가 들어가는 걸 다 셀 수는 없었다. 다만 접수 도우미를 하던 사촌이 영상을 보다가 이상한 데서 멈춰달라고 했다. 식 시작 직전, 하객이 뜸한 순간이었다. 사촌이 축의함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십 초 가까이, 정중하게.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촌한테 물었다. 너 이때 왜 인사했어?
사촌은 화면을 한참 보다가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이 이야기의 전부다.
"기억이 안 나. 근데 어른이 오셨으면 인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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