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함
대학도서관에서 야간 근로장학생으로 일 년 반 일했다. 밤 열 시부터 자정까지, 열람실 문단속과 무인 반납함 정리가 내 일이었다.
무인 반납함은 도서관 정문 옆에 있다. 우체통처럼 생긴 철제함인데, 넣으면 바코드가 자동으로 찍히면서 반납 처리가 되고, 책은 함 안에 쌓인다. 야간 근무자는 마감 전에 함을 열어 책을 꺼내고, 전산 반납 목록과 실물을 대조해서 북트럭에 싣는다. 대조가 중요하다. 가끔 바코드 인식이 누락되니까.
시월쯤부터 대조가 안 맞기 시작했다.
실물이 하나 더 나오는 날이 생겼다. 전산 반납 열두 건에 실물 열세 권. 처음엔 인식 누락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는 책의 바코드를 찍어보면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대출 중이 아닙니다. 반납할 수 없는 책이라는 거다. 서가에 꽂혀 있어야 할 책이 반납함에서 나온 거였다.
누가 서가에서 그냥 들고 나갔다가 반납함에 넣었나 보다, 했다. 도난 방지 게이트가 있지만 뚫는 방법이야 있으니까. 그렇게 처리하고 서가에 도로 꽂았다.
그런데 그런 책이 매주 나왔다. 일주일에 한 권씩, 꼭 목요일 밤에.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오래된 책이었다. 등록번호가 팔십년대, 구십년대인 책들. 요즘 학생들은 안 찾는, 서고 깊숙한 줄에 꽂힌 책들이었다. 향토사 자료, 절판된 소설, 옛날 논문집. 그리고 하나같이, 마지막 대출 기록이 이십 년도 더 전이었다.
한 권을 펴봤다가 그 안에서 대출카드를 발견했다. 전산화 전에 쓰던, 책 뒤표지 주머니에 꽂힌 종이 카드. 손글씨로 대출자 이름과 날짜를 적던 시절 물건이다. 카드에는 이름이 서너 개 적혀 있었고, 마지막 줄의 반납일 칸이 비어 있었다.
빌려 가고 반납 안 된 책이라는 뜻이다. 종이 카드 시절에.
나는 그다음 주에 나온 책도 대출카드를 확인했다. 마지막 줄 반납일 공란. 그다음 주도. 공란. 매주 목요일 반납함에서 나오는 책들은, 전부 수십 년 전에 빌려 가서 반납되지 않았던 책이었다.
누군가 아주 오래 밀린 반납을 하고 있었다.
사서 선생님한테 보고했다. 정규직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듣더니 이상하게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서고 안쪽 캐비닛에서 낡은 파일을 하나 꺼내 왔다. 장기 미반납 목록이라고 적힌, 종이 시절의 대장이었다.
"대조해봐요."
반납함에서 나온 책들의 청구기호를 대장에서 찾았다. 다 있었다. 미반납 목록에. 그리고 대출자 이름 칸을 본 순간 나는 소름이 아니라 이상한 서글픔 같은 게 왔다. 전부 같은 이름이었다. 한 사람이 수십 년 전에 수십 권을 빌려 가서, 반납하지 않았던 거다.
선생님은 그 이름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졸업생 명부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안 찾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왜요, 하고 물으니 선생님은 대장을 덮으며 말했다.
"반납하러 오는 데 사정이 있었겠죠. 수십 년 걸린 사정이면, 안 물어보는 게 예의예요."
우리는 그 뒤로 목요일마다 나오는 책을 그냥 처리했다. 대출카드 마지막 줄에 반납일을 적고 — 선생님이 손글씨로 적었다, 요즘 날짜를 옛날 양식에 — 서가에 꽂았다. 미반납 대장의 해당 줄에는 붉은 펜으로 '반납 완료'를 그었다.
대장의 그 이름 아래 책은 서른일곱 권이었다. 반납은 여덟 달 동안 이어졌다. 매주 한 권씩, 방학에도 거르지 않고.
서른일곱 번째 책이 나온 밤을 기억한다. 시집이었다. 대출카드 뒤에 뭐가 더 꽂혀 있었다. 도서관 열람증이었다. 코팅이 다 해진, 흑백 증명사진이 붙은 옛날 열람증. 반납이 끝났으니 증도 반납한다는 뜻 같았다.
선생님은 그 열람증을 대장 파일에 끼워서 캐비닛에 넣었다. 폐기하지 않고. 그리고 대장의 마지막 줄에 붉은 줄을 그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연체료는 면제해드려야지. 사정이 사정이니까."
그다음 목요일부터 반납함 대조는 다시 맞았다. 지금까지 쭉 맞는다.
나는 요즘도 목요일 마감 때 반납함을 열면서 잠깐 기다렸다가 닫는다. 혹시 늦게 오는 반납이 있을까 봐. 도서관이라는 데는 원래 그런 데다. 얼마나 늦게 오든, 반납은 받아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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