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뒷줄 왼쪽 끝
할아버지가 이장을 지낸 마을에 작년부터 내려와 살고 있다. 빈집 정리도 할 겸, 재택근무가 되는 직장이라 겸사겸사였다. 마을 인구는 서른 명 남짓. 평균 연령은 일흔이 넘는다.
마을회관에 가면 벽 한 면이 전부 단체사진이다. 새마을 모자 쓰고 찍은 흑백부터 작년 경로잔치 컬러사진까지, 사십 년치가 액자로 걸려 있다. 처음 인사 다니던 때 그 벽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젊은 할아버지도 찾았고, 지금 노인회장님의 새신랑 시절도 찾았다.
몇 번을 보다 보니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맨 뒷줄 왼쪽 끝자리가 늘 비어 있었다.
한두 장이 아니었다. 전부였다. 흑백사진에서도, 컬러에서도, 작년 사진에서도. 사람들이 줄 맞춰 선 대형에서 맨 뒷줄 왼쪽 끝만 한 사람 폭만큼 빈다. 사진 구도가 잘려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배경 담벼락이나 현수막은 멀쩡히 이어지는데 사람만 없다. 다들 어깨가 닿게 붙어 서면서 그 자리만 피해서 선 것처럼.
노인회장님한테 여쭤봤다. 회장님은 안경을 올리고 사진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거긴 원래 비워."
왜요, 하니까 회장님은 믹스커피를 저으면서 잠깐 생각하다가, 자기도 젊을 때 어른들한테 똑같이 물었다고 했다. 그때 어른들 대답이 이랬다고 한다. 거긴 서는 자리가 아니라 서 있는 자리라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내 얼굴을 보고 회장님이 덧붙였다.
"비어 보여도 빈 게 아니라는 거지. 아무튼 사진 찍을 일 있으면 너도 거긴 서지 마라."
궁금해서 면사무소 다니는 동창한테 옛날 기록을 물어봤다. 사십몇 년 전에 이 마을에 수해가 있었다. 저수지 둑이 아니라 뒷산 사방댐이 터졌고, 마을 사람 하나가 떠내려갔는데 끝내 못 찾았다고 한다. 그 사람이 마을 사진마다 맨 뒷줄 왼쪽 끝에 서던 사람이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만 그해부터 마을 단체사진이 남아 있고, 첫 사진부터 그 자리가 비어 있다.
작년 가을에 군수가 마을을 다녀갔다. 도로 포장 준공식이었다. 기념사진을 찍는데 수행 온 젊은 직원이 대형 맞추느라 사람들을 정리하다가 자기가 맨 뒷줄 왼쪽 끝에 섰다. 마을 어른들 몇이 뭐라 하려다가 말았다. 외지 사람한테 설명하기도 뭐한 얘기니까.
사진은 군청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그 직원은 나오지 않았다. 잘린 게 아니다. 그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배경 현수막이 그대로 보였다. 옆에 선 부녀회장님 어깨에 그 직원 손이 올라가 있었는데, 사진에는 어깨만 있다.
동창을 통해 들으니 그 직원은 잘 있다고 한다. 다만 그 뒤로 주말마다 우리 마을에 온다고 했다. 등산 삼아 온다는데, 마을 사람들 말로는 회관 앞에 차를 세워두고 벽에 걸린 사진들을 한참 보고 간다고 한다. 뭘 찾는 것 같다고. 본인은 뭘 찾는지 모르는 얼굴로.
지난달에 마을 어르신 팔순 잔치가 있어서 또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제 이 마을 사람이라 뒷줄에 섰다. 오른쪽 끝에. 사진사가 대형을 보더니 왼쪽 끝이 허전하다고, 거기 한 분 서시라고 손짓했다. 아무도 안 움직였다. 사진사가 두 번 더 말했고, 노인회장님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거긴 됐어요, 찍읍시다.
인화된 사진이 지난주에 회관 벽에 걸렸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봤다. 맨 뒷줄 왼쪽 끝, 여느 때처럼 비어 있었다.
그런데 사십 년치 사진을 처음부터 차례로 다시 보다가 알았다. 옛날 사진에서 그 빈자리는 정말 끄트머리, 담벼락에 붙은 구석이었다. 최근 사진일수록 빈자리가 조금씩 안쪽이다. 사람들이 해마다 줄어드니까 대형이 좁아지고, 빈자리는 그만큼 가운데로 들어왔다. 작년 사진에서는 뒷줄 한가운데서 두 칸 옆이었다.
마을 인구는 계속 준다. 대형은 계속 좁아질 거다.
언젠가 이 마을 마지막 단체사진에는, 그 자리가 어디쯤 올지 나는 가끔 계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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