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친구

조회 3댓글 01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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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 동생에게는 상상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현이 형'이었다.

동생이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현이 형은 우리 집에 살았다. 동생 기준으로는. 밥 먹을 때 현이 형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고, 잘 때 현이 형 얘기를 하고. 흔한 상상친구였고 부모님도 그러려니 했다. 다만 이상한 디테일이 몇 개 있었다. 동생은 현이 형이 "옛날 옷"을 입었다고 했다. 그림을 그려보라니까 바지저고리 비슷한 걸 그렸다. 그리고 현이 형은 우리 집이 아니라 "큰집"에 산다고 했다. 자기는 놀러 오는 거라고.

우리 큰집은 지방에 있는 종가다. 동생은 그때 큰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일곱 살 무렵 상상친구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동생은 지금 서른둘이고 그 시절을 기억도 못 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어린 시절 얘기다.

지난달에 큰집에서 족보 정리를 했다. 종친회에서 족보를 새로 인쇄하면서 파일로도 만든다고, 각 집에 확인 요청이 돌았다. 아버지가 눈이 침침하다고 해서 내가 파일을 대신 검토했다.

우리 직계 페이지를 보다가 낯익은 이름에서 멈췄다.

O현(O鉉). 할아버지의 형. 그러니까 큰할아버지뻘 되는 분인데, 나는 존재도 몰랐던 분이었다. 기록은 짧았다. 생년, 그리고 일곱 살에 죽은 몰년. 후사 없음.

일곱 살.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버지도 잘 몰랐다. 자기도 어릴 때 어른들한테 언뜻 들은 게 전부라고 했다. 어려서 병으로 죽은 형님이 계셨다고. 옛날에는 그런 일이 흔해서 얘기를 잘 안 했다고.

"근데 그건 왜 물어?"

나는 동생의 상상친구 얘기를 꺼냈다. 현이 형. 옛날 옷. 큰집에 산다던 말.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다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얘기를 듣더니 얼굴이 변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래된 앨범을 들고나왔다.

동생 네 살 무렵 사진들이었다. 엄마는 그중 한 장을 짚었다. 동생 생일상 사진. 케이크 앞에 동생이 앉아 있고, 그 옆에 빈 의자가 하나 있었다.

"이 의자, 얘가 하도 우겨서 놔준 거야. 형 자리라고." 엄마가 말했다. "근데 그때 이상했던 게 있어. 얘가 상 차릴 때마다 그랬어. 형은 미역국 말고 흰죽. 아픈 사람이라 흰죽 먹는다고. 네 살짜리가."

병으로 죽은 일곱 살 형님. 아픈 사람이라 흰죽.

**업데이트**

이 글을 쓰다가 동생한테 전화했다. 상상친구 기억나냐고. 동생은 웃었다. 전혀 기억 안 난다고, 엄마한테 얘기만 들었다고. 그렇겠지 하고 끊으려는데 동생이 덧붙였다.

"근데 형, 웃긴 게 뭔지 알아? 나 요즘도 가끔 흰죽이 당겨. 아프지도 않은데. 그럼 끓여 먹으면서 꼭 두 그릇 떠. 버릇이야. 왜 그러는지 나도 몰라."

동생은 지금 자취 팔 년 차고, 혼자 산다.

족보 검토 의견란에 나는 뭐라고 적을지 오래 고민했다. 결국 이렇게 적어 보냈다. "O현 어른 기록 이상 없음. 다만 종친회에 문의드립니다. 어려서 후사 없이 간 분들 제사는 누가 지내는지요."

종친회에서 답이 왔다. 그런 분들은 따로 제사가 없고, 시제 때 묶어서 지낸다고. 그러면서 노인 한 분이 전화를 주셨는데, 통화 끝에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근데 그 어른은 괜찮을 거요. 어려서 간 애들은 제삿밥보다 동무를 찾아다녀요. 또래 있는 집으로. 놀 만큼 놀면 지 발로 돌아가요. 잘 놀다 갔으면 된 거지."

동생이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현이 형이 죽은 나이가 일곱 살. 상상친구가 사라진 게 동생 일곱 살 때.

같이 늙을 수 있는 데까지 놀다가 간 거였다.

이번 시제에는 나도 내려가 보려고 한다. 절은 어른들이 올리겠지만, 나는 따로 흰죽을 한 그릇 준비해 갈 생각이다. 동생한테는 말 안 하고. 걔는 기억 못 하는 형이지만, 우리 집에서 삼 년 놀다 간 손님이니까. 손님 대접은 기억하는 쪽이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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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족보#상상친구#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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