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7화. 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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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7화

우유통을 흔들던 예람이가 물었다. 치킨 상자를 내려놓지도 않은 채였다.

"오늘… 안 왔어?"

로그에 아무것도 없더라, 하고 나는 대답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예람이는 우유를 냉장고에 도로 넣고 치킨을 풀었다. 그날 저녁 예람이는 평소의 배로 말을 했다. 카페 진상 얘기, 사장 얘기, 아무 얘기. 말이 많아지는 건 예람이가 불안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걸 이 집에서 배웠다.

다음 날도 로그는 비어 있었다. 우유 그대로. 계란 열 알 그대로.

그다음 날도.

사흘째가 되자 나는 이상한 걸 깨달았다. 나는 아침마다 우유가 줄어 있기를 바라면서 냉장고를 열고 있었다. 두 달 전의 나한테 말해주면 안 믿을 거다. 삼백이 비어 있으면 규칙이 살아 있는 거다. 규칙이 살아 있으면 나는 뭘 하면 되는지 안다. 채우면 된다. 그런데 조용하면,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 조용한 건 규칙이 아니니까.

밀린 건 반드시 채워진다. 그 문장을 쓴 것도 나다. 지금 매일 밀리고 있는 거라면. 사흘치가 어딘가에 쌓이고 있는 거라면.

사흘째 저녁에 예람이가 출근 전에 냉장고를 열었다. 우유통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통을 든 채로 돌아서서 나를 정면으로 봤다.

"너, 문 열었지."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거짓말을 준비해뒀었는데, 예람이 얼굴을 보고 그만뒀다. 사색이라는 말을 글로만 알았는데, 실물은 그날 처음 봤다.

토요일에, 하고 나는 말했다. 잠깐. 아무것도 안 건드렸어.

예람이는 우유통을 식탁에 내려놨다. 손이 미세하게 떨려서 통 안의 우유가 같이 떨렸다.

"그건 자기 방을 본 사람 앞에는 한동안 안 와."

예람이가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예람이 입에서 나온 말 중에 제일 구체적인 규칙이었다.

"안 오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 거지? 아니야. 안 오는 동안 몫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쌓여. 사흘이면 사흘치가 그대로 쌓여 있는 거야. 그리고 그건—" 예람이가 숨을 골랐다. "그건 언젠가 꼭 와. 밀린 거 받으러."

나는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게 애쓰면서.

"너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예람이는 대답을 골랐다. 시선이 냉장고와 창고방 문 사이 어딘가를 헤맸다. 그러다가 포기하는 것처럼, 앉았다. 식탁 의자에. 출근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수칙이 있어. 언니가 정리해준 거."

수칙. 나는 그 단어를 소리 없이 따라 했다. 정리해준. 그러니까 언니는 이 일을 정리가 가능할 만큼 알고, 항목으로 만들 만큼 겪었고, 그걸 예람이한테 물려줬다는 거다. 인수인계처럼.

"보여줘."

"내일." 예람이가 일어나서 시계를 봤다. "나 진짜 늦었어. 내일 보여줄게. 진짜야."

예람이가 나가고 나는 식탁에 혼자 남아서 밀린 몫을 계산했다. 하루 몫이 우유 삼백이면 사흘이면 구백. 우유로 안 되면 계란으로, 계란으로 안 되면 쌀로. 품목별 사흘치 환산표를 만들다가 손이 멈췄다.

지난번에 하루 밀렸을 때는 우유 육백으로 끝났다. 그건 물건으로 받아 간 거다. 그런데 사흘치를 물건으로 받아 가려면 얼마나 가져가야 하나. 그리고 만약, 물건으로는 안 받겠다고 하면.

수칙에 일곱 번째 항목이 있다는 걸 나는 그때는 몰랐다. 그냥 밤이 길었다.

자기 전에 나는 우유를 가득 채워놨다. 계란도 새로 사다 놨다. 즉석밥도. 받으러 오면 언제든 받아 갈 수 있게. 빚진 사람이 현관에 돈봉투를 걸어두는 심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밀린 몫: 3일치. 우유 900 상당.
채워둠. 언제든.

적고 나서 그 아래에, 나는 처음으로 그 종이에 셈이 아닌 문장을 적었다.

빨리 와서 가져가라.

내가 그걸 기다리는 쪽이 될 줄은 몰랐다.

—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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