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6화. 창고방
《동거인》 — 연재 6화
토요일에 예람이가 낮 대타를 나갔다. 방문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대타. 저녁에 치킨 사갈게.' 화해의 쪽지라는 걸 안다. 우리는 선반 일 이후로 사흘째 서로 존댓말처럼 조심하고 있었다.
집에 나 혼자였다. 오전 열 시 반.
나는 낮 한 시 전에는 그 문을 열었다가 닫을 생각이었다. 한 시부터 세 시는 그것의 시간이고, 나는 그 시간엔 집을 비워야 하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반이었다. 셈은 늘 나를 침착하게 만든다. 그날은 셈이 아니었으면 손잡이를 못 잡았을 거다.
창고방 문. 이사 온 날 딱 한 번 열어봤다. 그때는 상자가 가득한 평범한 창고였다. 그 뒤로 다섯 주 동안 나는 그 문을 연 적이 없다. 예람이가 여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손잡이는 차가웠고,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내가 처음 안 것은, 이 방 창에 커튼이 쳐져 있다는 거였다. 이사 온 날에는 커튼이 없었다. 짐만 쌓인 방에 누가 커튼을 달았을까. 빛이 커튼 색을 통과해서 방 전체가 옅은 살구색이었다.
상자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대로인데, 달랐다.
이사 온 날에는 상자가 방 가운데까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지금은 상자들이 벽을 따라 허리 높이로 고르게 정리돼 있었다. 그리고 그 상자 벽 안쪽으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사람 하나 지나갈 폭. 길은 방 안쪽, 창문 아래까지 이어졌다.
창문 아래에 이불이 한 채 깔려 있었다.
우리 이불이 아니다. 나는 내 이불 커버 무늬를 알고 예람이 것도 안다. 처음 보는 이불이었다. 오래 쓴 티가 나는, 모서리가 눌린 이불. 그 이불 가운데가 사람 모양으로 꺼져 있었다. 방금 일어난 자리처럼 선명한 게 아니라, 오래 같은 자세로 누워서 생긴, 천이 그 모양을 기억해버린 꺼짐이었다. 몸을 조금 웅크린 모양. 크기는 성인.
베개 자리에는 베개 대신 옷이 개켜져 있었다. 짐 상자에서 나온 듯한 니트였다. 그리고 그 머리맡에, 우유팩이 쌓여 있었다.
빈 팩이었다. 다 마신 우유팩을 물로 헹궈서, 펼쳐서, 납작하게 접은 것. 분리수거하려고 내가 늘 하는 그 방식 그대로. 그게 차곡차곡, 벽돌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서 팩을 셌다. 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흔일곱 개였다.
내가 사는 초록 팩이 열한 개. 다섯 주 동안 이 집에서 나올 만큼 나온 수다. 셈이 맞았다. 문제는 나머지 서른여섯 개였다. 내가 안 사는 브랜드가 두 종류. 팩이 누렇게 바랜 것도 있었다. 서른여섯 개면, 하루 삼백씩 계산해서 넉 달치다. 내가 오기 전 넉 달,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누가 여기서 우유를 마시고 팩을 접어 쌓았다.
접어서, 쌓았다. 그게 이상하게 제일 아팠다. 훔쳐 먹는 쪽은 팩을 안 접는다. 흔적을 지우려면 버리면 된다. 이건 흔적을 지운 게 아니라 살림을 한 거다. 마신 것을 헹구고, 말리고, 접어서, 자기 머리맡에 쌓아두는 것. 누가 가르쳐준 살림 버릇을 계속하고 있는 것.
방에서는 먼지 냄새가 나야 했는데, 나지 않았다.
나는 십일 분 만에 나왔다. 시계를 봐서 안다. 나오기 전에 이불 앞에서 잠깐 서 있었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그 방에서 제일 컸던 감정이 무서움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남의 잠자리를 허락 없이 들여다본 것 같은, 미안함 비슷한 것. 좁은 데서 웅크리고 자는 사람을 봤을 때의 그것.
문을 원래대로 닫았다. 손잡이를 놓는데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나는 열두 시 사십 분에 집에서 나왔다. 카페에서 세 시 반까지 있다가 들어왔다. 규칙대로. 들어오자마자 로그부터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열림도, 실패도, 아무것도. 다섯 주 만에 처음으로 로그가 비어 있었다. 우유도 그대로였다. 삼백이 줄지 않은 우유통을 나는 오래 들여다봤다.
지난번에 내가 집에 있었을 때는 실패라도 찍혔다. 오려고 했다는 뜻이다. 오늘은 시도조차 없었다.
문 연 걸 들켰다는 생각이 먼저 왔고, 그다음에 더 이상한 생각이 왔다.
들키면, 안 오는구나.
부끄러워하는구나.
가계부 옆 종이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빈 우유팩 47. 그중 36은 내가 오기 전 것.
오늘 로그 0. 우유 그대로.
그리고 치킨을 사 들고 온 예람이가 현관에서 우유통을 흔들어보고 그대로 굳는 것을, 나는 식탁에서 지켜봤다.
— 7화에 계속
본 콘텐츠는 창작입니다. 등장 지명·인물·건물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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